월인천강지곡
월인천강지곡 | |
한자명칭 | 月印千江之曲 |
---|---|
로마자명칭 | Worincheongangji-gok |
영문명칭 | Songs of the Moon’s Reflection on a Thousand Rivers. A book containing Sejong’s long work of song praising the good deeds of Buddha. |
작자 | 세종 |
간행시기 | 1449년(세종31) |
기탁처 | 미래엔교과서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문화재지정사항 | 보물 제398호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1.0×20.5㎝ |
판본 | 금속활자본(갑인자)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해독문 | 월인천강지곡 서문 |
목차
정의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장편의 노래를 수록한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장편의 노래를 수록한 책이다. 상권 1책에 194수의 노래가 실려 있으며, 1963년 9월에 보물 제398호로 지정되었다. 이 책은 1914년 부안 실상사의 불상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월인천강지곡』이 실상사에 보관되었던 이유는 실상사가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효령대군은 1462년(세조 8) 실상사의 삼존불 조성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했으며, 1466년(세조 12) 4월에는 실상사에 방문해 중창 발원문을 지었다. 효령대군이 실상사 중창과 삼존불의 조성에 관여하면서 『월인천강지곡』이 불상에 복장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표기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 국어학 연구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원칙을 따랐다. 둘째, 한자를 앞세우고 그 아래에 한글로 음을 다는 표기법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한글을 사용하려는 주체성을 보여준다. 셋째, 당대의 한자음 표기법은 종성(終聲)이 없는 자리에 음가가 없는 ‘o’을 붙였는데, 이 책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1]
『월인천강지곡』의 편찬과정과 내용
『월인천강지곡』은 본래 수양대군(首陽大君)이 1447년(세종, 29)에 『석보상절』을 지어 올리자 이를 본 세종이 『석보상절』의 내용에 맞추어 부처의 공덕을 칭송하여 읊은 찬불가이다. 수양대군이 『석보상절』을 지은 까닭은 1년 전 세종의 부인인 소현왕후가 죽자 그녀의 공덕을 빌기 위해서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부처의 일대기를 담은 『석보상절』을 편찬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수양대군은 『석보상절』을 편찬할 때 신미(信眉), 김수온(金守溫) 등의 도움을 받으면서 남제(南齊, 479~502)시기 승우(僧祐)가 편찬한 『석가보(釋迦譜)』와 당(唐, 618~907)시기 도선(道詵)이 편찬한 『석가씨보(釋迦氏譜)』를 참조하여 새롭게 편찬하고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이후 『월인천강지곡』은 『석보상절(釋譜詳節)』과 함께 합편되어 『월인석보(月印釋譜)』로 간행되었다. 이 책의 간행 시기는 『석보상절』이 이루어진 1447년(세종, 29)에서 그 다음해인 1448년 사이에 완성하여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권상에 실린 노래가 모두 194곡이므로 전체로는 모두 580여 곡의 노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월인석보』에 실린 노래까지 합하면 모두 약 440곡이 알려져 있다.[2]
『월인천강지곡』의 간행과정
1961년 통문관(通文館)에서 실물 크기대로 영인하여 간행하였고, 그 밖에 1962년 『국어학』 1호 등에도 영인본으로 수록되었다. 1985년 대제각에서 ‘국어국문학 총림 11’로 『월인석보』와 함께 영인하였으며, 2002년에는 대산문화재단의 해외 한국학 연구지원을 받아 함부르크 대학의 베르너 삿세(Werner Sasse), 안정희 교수팀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된 것이 소학사에서 출간되기도 하였다. 활자본으로 상, 중, 하 3권으로 되었으나, 현재 상권 1책과 중권의 낙장(落張)이 전할 뿐이다. 상권 1책과 중권 낙장이 보물 제39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상권과 중권의 낙장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석보상절』에 끼어 전한다.[3]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수양대군 | 석보상절 | A는 B를 간행하였다 | 1447년 |
세종 | 월인천강지곡 | A는 B를 간행하였다 | 1449년 |
월인석보 | 월인천강지곡 | A는 B를 포함한다 | |
월인석보 | 석보상절 | A는 B를 포함한다 | |
세종 | 소현왕후 | A는 B의 남편이다 | |
수양대군 | 소현왕후 | A는 B의 자식이다 | |
수양대군 | 세종 | A는 B의 자식이다 | |
석보상절 | 석가보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석보상절 | 석가씨보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수양대군 | 월인석보 | A는 B를 간행하였다 | |
부안 실상사 | 월인천강지곡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1914년 |
통문관 | 월인천강지곡 | A는 B를 영인하였다 | 1961년 |
국어학 | 월인천강지곡 | A는 B를 영인하였다 | 1962년 |
국어학 | 월인석보 | A는 B를 영인하였다 | 1962년 |
대제각 | 월인천강지곡 | A는 B를 영인하였다 | 1985년 |
대제각 | 월인석보 | A는 B를 영인하였다 | 1985년 |
소학사 | 월인천강지곡 | A는 B를 간행하였다 | 2002년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14년 | 월인천강지곡은 부안 실상사 불상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
1961년 | 월인천강지곡은 통문관에서 영인했다 |
1962년 | 월인천강지곡은 『국어학』 1호 에서 영인본으로 수록되었다. |
1985년 | 월인천강지곡은 대제각에서 영인되었다 |
2002년 | 월인천강지곡은 독일어로 번역되어 소학사로 출간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2258 | 127.054364 | 월인천강지곡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소장하고 있다 |
35.701879 | 126.578415 | 월인천강지곡은 부안 실상사에서 발굴되었다 |
시각자료
갤러리
- 한글팀 월인천강지곡 01 시작.jpg
월인천강지곡 시작
- 한글팀 월인천강지곡 02 중간.jpg
월인천강지곡 중간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6쪽.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 연도 오류 수정.
- ↑ 이동림, 월인천강지곡 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03일 - ↑ 이동림, 월인천강지곡 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03일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안승준, 유학명, 「《월인천강지곡》의 부안 실상사 소장 경위와 그 전래 과정」, 『장서각』, Vol 32, 2014, 48~74쪽.
- 사제동, 사진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훈민정음 활용과 연행적(演行的) 유통 양상」, 『語文硏究』, Vol 74, 2012, 279~306쪽.
- 김보현, 「《월인천강지곡》의 서사 구성 방식에 관한 연구」, 『우리文學硏究』, Vol 51, 2016, 199~2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