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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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ica-jang (토론) 사용자의 2017년 6월 11일 (일) 12: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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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두의
한자표기 蒙頭衣
이칭별칭 몽두리(蒙頭里)
복식구분 의복
착용신분 궁녀, 여령
착용성별 여성
관련복식 대수, 적의



정의

조선시대 궁중의 낮은 신분인 여관이나 하층 부녀의 예복, 궁중 정재에 참여하는 여령의 옷, 무당의 무복이다.[1]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궁녀, 여령, 하층 부녀 등이 착용한다.

착용상황

몽두의의 기록은 태종 12년(1412) 6월 "궁녀와 상기 이외의 서인의 부녀와 종비, 천례의 옷은 다만 주와 저포의 몽두의를 입게 하자."라는 사헌부의 상소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 기록으로 보아 당시 몽두의는 천한 여성의 옷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의경의 상례비요에는 여자 수의용 상복 중 하나로 몽두의를 제시하고 있는데, 당시의 수의는 실제 착용되었던 옷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므로 수의용 몽두의는 평소 착용되었던 여성용 포로 보인다. 한편 궁중발기 중 순화궁가례시절차를 보면 가례에 참여하는 기행나인 4인의 복식으로 홍몽도리 1쌍과 황몽도리 1쌍이 기록되어 있다. 영조 이후 『가례도감의궤』에는 같은 위치에 홍장삼과 황장삼으로 나타나므로, 당시 기행나인의 '몽도리'를 장삼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형태로 보는 설도 있다. 하층 여관의 옷으로서 몽두리의 사용은 세종 28년(1446)에 제정한 상복제도에 나타난다. 6품 이하 여관의 상복 중 배자를 가리켜 "곧 본국의 몽두의다."로 설명하고 있다.[2]

형태

조선후기 궁중 행사를 기록한 진찬·진연 의궤나 도병 등을 보면 여령들이 황색의 몽두의를 입은 모습이 확인되는데 대개 섶이 없고 마주 여미는[3] 대금형에 맞깃이 달려 있으며 길지 않은 소매가 달린 깃 옷이다. 그러나 19세기 초부터 기록이나 회화 자료 등에서 대금형이 아닌 교임형의 몽두의가 등장하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유물 중에 대금형과 교임형이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본래의 대금형 포제에서 점차 교임형의 포제로 변화를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4]

기타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몽두의 왕비 A는 B를 착용하였다
몽두의 왕세자빈 A는 B를 착용하였다
몽두의 왕세손빈 A는 B를 착용하였다
몽두의 홍장삼 A는 B에 착용한다
몽두의 의궤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314쪽.
  2.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314~315쪽.
  3.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315쪽.
  4. 박성실, 「조선시대 蒙頭衣에 관한 연구」, 『服飾』55권 8호, 2005, 67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