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진-장보고의 해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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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해상 활동
작가 박광진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군사
분류 유화
소장처 미상



개요

청해진(淸海鎭 : 지금의 전남 완도군)을 거점으로 한 장보고 선단의 수군들이 적선을 격파하는 장면.


설명

작품 소재

신라의 해안지방 출신인 장보고는 젊은 시절 당(唐)에 건너가 무령군소장(武寧軍小將)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와 노비가 된 동포들의 참상을 보고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귀국하여 청해(淸海 : 지금의 전남 완도)에 군영을 설치할 것을 왕에게 요청하여 828년(신라 흥덕왕 3년)에 청해진 대사(大使)에 임명되었다. 장보고는 군사 1만 명을 양성하여 중국과 일본 해로의 요처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남 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는 중국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무역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결국 청해진은 중계무역장으로서 서남 해로의 요해처 구실을 하였다.[1]

작품 구도

거세게 일렁이는 파도를 뚫고 장보고 선단 군사들이 중국 해적들을 공격하고 있다. 하단에는 북채를 들고 북을 치는 병사와 장검을 들고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인물이 보인다. 불화살 공격을 받은 적선에서는 화염이 치솟아 오르고 해적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다. 청해진 군사들의 배와 무장에 조선시대의 모습이 보이는 점은 작가의 고증에 대한 애로를 되돌아 보게 된다.[2]

시각적 안내

오류: 그림이 잘못되었거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박광진 박광진-장보고의 해상 활동 A는 B를 그렸다. 1975년
박광진-장보고의 해상 활동 장보고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박광진-장보고의 해상 활동 청해진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5년 박광진가 박광진-장보고의 해상 활동를 제작하였다.
1991년 11월 30일-1992년 11월 29일 육군 제2218부대가 박광진-장보고의 해상 활동를 대여하였다.
828년 장보고청해진을 설치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4.358599 126.735294 장보고청해진을 설치하였다.

그래프


참고문헌

  • 대한민국국회의원동우회, 『민족기록화 전승편』, 한국도서출판공사, 1981년.

주석

  1. "청해진", 『두산백과』online, 두산. 최종확인: 2017년 04월 17일.
  2. "신작의 주변, 장보고의활약상 제작중인 박광진 화백", 『매일경제』, 1975년 0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