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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
한자명칭 | 外進宴時舞童各呈才舞圖笏記 |
---|---|
영문명칭 | A process of dancers’ dance in the party celebrating the 50th birthday of Emperor Gojong |
간행시기 | 1901년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2-2890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4.8×7.0㎝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글 |
해독문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해독) |
목차
정의
1901년(광무5) 고종황제(1852~1919)의 탄생 50주년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무동(舞童)들의 춤 순서를 기록한 한글본 홀기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1901년(광무5) 고종황제(1852~1919)의 탄생 50주년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무동(舞童)들의 춤 순서를 기록한 한글본 홀기이다. 55절 110면의 첩장으로, 겉면을 붉은색 비단으로 감싸고 흰색 제첨에 ‘외진연시무동각졍 무도홀긔’라고 명기하였다. 본문은 붉은 인찰선을 그어 격식에 맞춰 쓰고 한 면에 4행이 보이도록 접었다. 장서각에는 동일한 내용의 한문본 1종과 한글본 2종이 전한다. 1901년(광무5) 7월 25일에 경운궁(현 덕수궁) 중화전에서 고종황제의 탄신을 경축하는 의례를 행하였다. 이를 위한 연회로 황태자와 문무백관이 참석하는 외진연(外進宴), 황태자를 비롯한 왕실구성원과 친인척이 참석하는 내진연(內進宴)과 야진연(夜進宴) 등이 열렸는데, 당시 진연의 구체적인 내용은 『진연의궤(進宴儀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본 홀기는 7월 26일 함녕전에서 설행된 외진연에 관한 것으로, 황태자가 지은 <악장(樂章)> ‘만년환(萬年懽)’을 비롯하여 <초무(初舞)>, <봉래의(鳳來儀)>, <몽금척(夢金尺)>, <아박무(牙拍舞)> 등 무동의 19가지 공연을 기록하였다. 마지막은 <태평가(太平歌)>의 가사로 끝 맺었는데, 연주 악곡의 이름, 춤의 배치도 및 순서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1]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의 내용
홀기는 의식에서 그 진행 순서를 적어 낭독하게 하는 기록이다. 크게는 국가의 종묘 의례에서부터 작게는 서원, 민가의 행사에까지 이용되었다. 홀기는 절차를 미리 의정해 그대로 시행함으로써 절차의 오류를 막고 시비의 근원을 방지하는 장점이 있다. [2] 정재(呈才)란 궁중에서 여성이나 무동(無童:궁중의 각종 의례에서 춤추는 8세~15세의 남자아이), 지방 관아에서 기녀들이 공연했던 음악과 춤을 이르는 말이다. [3] 신축진연의궤에도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신축년 진연(進宴:궁중잔치)은 고종이 50세가 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황태자의 간청에 의해 1901년(광무5) 7월 경운궁 함녕전에서 시행된 것이다. 고종의 생일 다음날인 음력 7월 26일(양력 9월 8일)에 황제의 침전인 함녕전에서 외진연이 거행되었으며 6차례의 예행연습이 이루어졌다. 외진연에서 고종은 익선관에 황포를 입고 참석했으며 황태자와 휘장을 받은 관리들이 참석했다. 구작례(九爵禮:잔치에서 관리가 왕, 왕비, 세자 등에게 술잔을 9번 올리는 예)가 올려졌고 공연한 정재는 모두 19종류(제수창,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봉래의(鳳來儀), 헌선도(獻仙桃), 초무(初舞), 육화대(六花隊),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만수무(萬壽舞), 아박부(牙拍舞), 몽금척(夢金尺) 등)로 무동들이 담당하였다. 다음날인 음력 7월 27일(양력 9월 9일)에는 함녕전에서 내진연이 열렸고, 칠작례(七爵禮:잔치에서 관리가 왕, 왕비, 세자 등에게 술잔을 7번 올리는 예)가 진행됬다. 밤에는 야진연이 열렸는데 12종류의 정재가 공연되었다. [4]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에 실린 정재
제수창은 순조 때 창작된 정재로 임금을 송축(頌祝:경사를 기리고 축하함)하는 내용이다.[5] 가인전목단은 순조의 아들 익종이 아버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든 정재이다. 소반 위에 꽃병을 놓고 그 둘레에서 8명이 춤을 춘다. 4명은 꽃병에서 모란을 꺽고 다른 4명은 꽃은 꺽지 않고 춤만 춘다. [6] 봉래의는 조선 전기에 창작된, 용비어천가를 가사로 사용하는 음악과 그 춤을 말한다. [7] 헌선도는 고려 때 들어온 당나라의 정재이다. 정월 보름날 왕을 송축하기 위해 왕모(王母)가 선계(仙界)에서 내려와 선도(仙桃)를 주는 내용이다. [8] 초무는 조선 중기부터 전해지는 정재이다. 하나의 독립된 춤이라기 보다는 이제부터 춤을 춘다는 서무(序舞)의 구실을 한다. [9] 육화대는 조선 초기의 정재 중 하나이다.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에 춤의 절차가 전해진다. 따라서 성종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그 이후 400여년 동안 보이지 않다가 1901년 신축진연에서 모습을 보인다. [10] 연백복지무는 조선시대 순조 때 만들어진 정재이다. 『진찬의궤』와 『궁중정재무도홀기』에서 그 모습이 보인다. [11] 만수무는 조선시대 순조 때 만들어진 정재이다. 임금에게 선도(仙桃)를 올리며 만수무강을 비는 내용이다. [12] 아박무는 상아로 만든 '아박'이라는 무용 도구를 사용하여 추는 정재이다. [13] 몽금척은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정재이다. 조선 태조 때 정도전이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음악에 춤을 붙인 것이다. [1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고종황제신축진연 외진연 | 고종황제신축진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1901년 |
고종황제신축진연 외진연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1901년 |
고종 | 고종황제신축진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1901년 |
신축진연의궤 | 고종황제신축진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황태자 척 | 고종황제신축진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황태자 척 | 고종 | A는 B의 자식이다 | |
고종황제신축진연 | 중화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고종황제신축진연 외진연 | 함녕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중화전 | 덕수궁 | A는 B에 위치한다 | |
함녕전 | 덕수궁 | A는 B에 위치한다 | |
만년환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황태자 척 | 만년환 | A는 B를 지었다 | |
제수창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가인전목단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봉래의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헌선도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초무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육화대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연백복지무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만수무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아박무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몽금척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를 소장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01년 | 고종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고종황제신축진연이 거행되었다 |
1901년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가 저술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65758 | 126.974810 | 경운궁 중화전에서 고종황제신축진연이 거행되었다 |
37.565758 | 126.974802 | 경운궁 함녕전에서 고종황제신축진연 외진연이 거행되었다 |
37.39197 | 127.054387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를 소장하였다 |
시각자료
갤러리
- 한글팀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02 내용.jpg
내용
- 한글팀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01 표지.jpg
표지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22쪽.
- ↑ 권오호, "홀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정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오혜경, 「조선시대 舞童服飾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93-94쪽.
- ↑ 장사훈, "제수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장사훈, "가인전목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송방송, "봉래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장사훈, "헌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장사훈, "초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장사훈, "육화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장사훈, "연백복지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장사훈, "만수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장사훈, "아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 ↑ 성경린, "몽금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5일.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성무경,이의강, 『(완역집성) 정재무도홀기』, 보고사, 2005.
- 황문환 등, 『장서각한글자료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 논문
- 김현정, 「高宗 辛丑進饌·進宴儀軌에 나타난 服飾 比較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 김우경, 「고종황제즉위전후 공연양상 비교연구 : 《임진진찬의궤》·《고종대례의궤》·《신축진연의궤》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석사학위논문, 2012.
- 손방송,「대한제국 시절 진연과 교방사의 공연활동 (1)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를 중심으로-」 , 『한국학보』30, 일지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