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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5일 (목) 12:13 기준 최신판


개요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2차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양응정(梁應鼎),기대승(奇大升)에게 수학하였으며,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영해군수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형 경운(慶雲),경장(慶長)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때는 고경명(高敬命)이 이미 전사한 후로 그의 휘하였던 문홍헌(文弘獻) 등이 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합류하여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각 고을에 격문을 띄워 의병을 더 규합하고 금산,무주에서 전주,남원으로 향하는 일본군을 장수에서 막아 싸웠고, 금산에서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여 우지치(牛旨峙)에서 크게 격파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였으며, 이 승전은 1차 진주성싸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공으로 경상우병사에 임명되었다.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이 이끄는 일본군과의 2차진주성 싸움에서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충청병사 황진(黃進), 복수의병장(復讐義兵將) 고종후(高從厚) 등과 함께 진주성의 사수에 나섰으나 중과부적으로 9일 만에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자살하였다. <화순현 읍지>에 그의 「투강시(投江詩)」가 실려 있다. [1]


투강시(投江詩)

촉석루중삼장사(矗石樓中三壯士)       촉석루의 3장사는
일배소지장강수(一杯笑指長江水)       한 잔 술에 웃으며 장강을 가리키네
장강지수류도도(長江之水流滔滔)       장강물 도도히 흐르니
파불갈혜혼불사(波不渴兮魂不死)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혼은 죽지 않으리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금산에서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여 우지치에서 크게 격파함으로 1차 진주성싸움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2차 진주성싸움에서는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하였다.


노드 및 관계 테이블

노드 관계 노드
최경회 ~에 참전하였다 진주성싸움


참고

  1. 네이버 지식백과, '최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