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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5일 (목) 11:56 기준 최신판
가례 의대 발기 | |
영문명칭 | A list of clothes for the royal wedding |
---|---|
작자 | 미상 |
간행시기 | 1882년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1117 |
유형 | 고문서 |
크기(세로×가로) | 31.3×98.2cm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장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본 발기는 웃전의 가례를 위해 장만한 의대물목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본 발기는 웃전의 가례를 위해 장만한 의대물목이다. 배면에 제목이 없어 구체적인 용처는 알 수 없으나 황색으로 물들인 장지에 궁서체로 정교하게 썼을 뿐 아니라 별도의 봉투와 함께 앞면에 <웃뎐>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웃전에 보고용으로 작성한 발기로 짐작된다. 본 의대몰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원삼과 함께 당고의, 소고의, 한삼, 웃치마, 겹치마, 단치마, 너른봉디, 봉디, 단니의, 대자 등 가례 때 왕실여성이 입는 의복 발기이다. 특히 원삼의 색상이 다홍색이며 금치흉배를 어깨에도 갖춘 것으로 보아 왕비의 가례시 복식임을 짐작 할 수 있다. 조선왕실에서는 신분에 따라 황후는 황색, 왕비는 홍색, 비빈은 자적색, 공주·옹주는 초록색 등 옷감의 색을 구분해 사용하였다. [1]
발기
발기의 제작 배경에는 해당 물품을 마련하거나 인원을 배치하는 일에 대한 운용 체계가 있었다. 가례에는 상당량의 물품과 인원이 동원되었으므로 그 내역을 미리 작성해두지 않으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또 물품과 인원을 배치하는 과정에서는 변동사항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수정하지 않으면 진행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보고 문서를 작성할 때도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발기는 해당 의례를 진행하는 기간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작성되며, 작성 시기는 개별 발기에 따라 사전, 사후에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발기가 의례를 원활하게 진행하기위한 실무용 자료로서 의례가 모두 끝난 뒤에 등록이나 의궤의 기초 자료로 사용된다.[2]
가례의 각 절차에 소용된 물품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가례에 관여한 내인이나 내관들의 명단은 등록이나 의궤 등 관찬자료에서는 보기 힘든 내용으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왕실 의례의 구체적인 모습과 왕실 운영 체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한글본과 한자본 발기의 존재로 인하여 왕실의 문자 생활과 문서의 작성 및 보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3]
임오년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와 발기의 제작
당시 왕세자 가례를 위해 제작한 발기들은 간택부터 왕세자빈이 별궁에 머물고 육례를 거행한 뒤 시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례의 절차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발기의 내용은 간택에 참여하는 이들을 위한 상차림과 간택된 왕세자빈에게 하사하는 의대 내역, 왕세자빈이 별궁에 머무는 동안 마련된 복식, 패물 등 각종 기물에 대한 내역, 왕세자빈이 책봉 교명을 받는 수책례 등을 수행하는 내인들의 명단, 가례 준비에 관여했던 가례도감 관원을 비롯한 내관, 내인들에 대한 시상 내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음식, 복식, 기물, 명단으로 한정되며 해당 기록의 실상과 연계되는 기록이다. [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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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 순종 | A는 B의 어버이이다 | |
순종 |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1882년 |
순명효황후 |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1992년 |
순종 | 가례 의대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순명효황후 | 가례 의대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882년 | 순종의 가례를 위해 가례 의대 발기 저술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틀:PAHENAME가 소장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