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후비지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참고문헌) |
잔글 (판 1개를 가져왔습니다) |
(차이 없음)
|
2017년 6월 15일 (목) 11:56 기준 최신판
열성후비지문 | |
한자명칭 | 列聖后妃誌文 |
---|---|
로마자명칭 | Yeolseonghubijimun |
영문명칭 | A book to set an ideal type of Queen aimed for royal women |
작자 | 미상 |
간행시기 | 18~19세기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2-3926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0.3×19.5㎝ |
판본 | 필사본 |
수량 | 2책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조선왕실 여성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왕비의 여성상을 정립시키기 위해 엮은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조선왕실 여성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왕비의 여성상을 정립시키기 위해 엮은 책이다. 조선 태조의 왕비인 신의왕후 한씨(信懿王后 韓氏, 1337~1391) 부터 영조의 왕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 徐氏. 1692-1757) 서씨까지 역대 왕후 31인에 대한 행장과 지문 등을 한글로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책의 체제는 서문과 발문 없이 번역한 본문만 있으며, 내용은 지문(誌文) 15편, 행록(行錄) 6편, 사실(事實) 2편, 신도비명(神道碑銘), 기문(記文), 애책문(哀冊文), 존호책문(尊號冊文), 봉왕비책문(封王妃冊文), 봉왕세자빈책문(封王世子嬪冊文), 시책문(諡冊文), 행장(行狀) 등이 각 1편씩 수록되어 있다. 작자는 당대 문형(文衡)을 지낸 변계량(卞季良, 1369~1430), 권근(權近, 1352~1409), 정인지(鄭麟趾, 1396~1478), 장유(張維, 1587~1638) 등이며, 이외에도 명종, 선조, 숙종, 경종, 영조 등 국왕의 찬술도 있다. 왕이 집필한 어제(御製)는 총 9편인데 어머니에 대한 글보다는 아내를 위해 쓴 글이 많고, 숙종이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 1667~1701)에 대해 쓴 행록이 감동적이다. 특히 번역문에 한글로 소주(小註)를 첨가하여 한글 독자층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궁중에서 사용된 어휘와 표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변계량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18~19세기 |
권근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18~19세기 |
정인지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18~19세기 |
장유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18~19세기 |
신의왕후 | 열성후비지문 | A는 B에 언급된다 | |
태조 | 신의왕후 | A는 B의 남편이다 | |
정성왕후 | 열성후비지문 | A는 B에 언급된다 | |
영조 | 정성왕후 | A는 B의 남편이다 | |
명종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
선조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
숙종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
인현왕후 | 열성후비지문 | A는 B에 언급된다 | |
경종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
영조 | 열성후비지문 | A는 B를 지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8~19세기 | 열성후비지문이 간행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열성후비지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 한글팀 열성후비지문 02 승인순성신의 왕후 한시.jpg
열성후비지문 승인순성신의 왕후 한시
- 한글팀 열성후비지문 03 내용.jpg
열성후비지문 내용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84쪽.
참고문헌
- 허원기, 「녈셩후비지문(列聖后妃誌文)과 조선시대 왕비의 형상」, 藏書閣 (1999 2집), 한국목간학회, 1999, 89 - 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