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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태실은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면서 20세기 초 급격한 변동을 겪게 된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500년 역사를 끝마친 조선왕실은 이왕직(李王職)에 의해 통제되면서 기존 왕실에서 행해지던 여러 의례가 축소 또는 폐지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이때 태실 역시 1928년부터 1934년에 이르기까지 보존과 관리의 명목으로 서삼릉으로 이안(移安)되었으며 전국 각지에 태실을 조성했던 초안지(初安地)는 민간에 불하되거나 현상이 크게 변경되는 등 적절한 보존과 관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왕실의 번영과 새로 태어난 생명의 미래를 염원하며 조성된 조선왕실 태실은 그렇게 본래의 역사적 의미를 크게 훼손당한 채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 조선왕실 태실은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면서 20세기 초 급격한 변동을 겪게 된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500년 역사를 끝마친 조선왕실은 이왕직(李王職)에 의해 통제되면서 기존 왕실에서 행해지던 여러 의례가 축소 또는 폐지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이때 태실 역시 1928년부터 1934년에 이르기까지 보존과 관리의 명목으로 서삼릉으로 이안(移安)되었으며 전국 각지에 태실을 조성했던 초안지(初安地)는 민간에 불하되거나 현상이 크게 변경되는 등 적절한 보존과 관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왕실의 번영과 새로 태어난 생명의 미래를 염원하며 조성된 조선왕실 태실은 그렇게 본래의 역사적 의미를 크게 훼손당한 채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 ||
− | 최근 훼손된 태실의 역사성을 복원하고 대중에게 그 의미를 다시 부각시키기 위해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019년 8월부터 12월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함께 | + | 최근 훼손된 태실의 역사성을 복원하고 대중에게 그 의미를 다시 부각시키기 위해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019년 8월부터 12월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함께 「고양 서삼릉 내 묘역 및 태실 역사성 회복 연구」를 진행하여 서삼릉 소재 54기 태실의 초안지와 관련된 문헌 사료 및 현장 사진 자료를 확보하는 등 향후 태실 연구를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하였다. 또 2020년 1월 경기도는 그동안 문화재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태실을 보호 관리하고 새로운 문화자원으로 만들어 갈 보존 계획을 수립한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충청남도 또한 2020년 5월 「충청남도 태실문화재 실태 연구용역」 사업을 진행하여 태실에 대한 보존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태실에 대한 학술 조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그 역사경관적 의미가 재생되고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
하지만 태실에 대한 일련의 연구 성과나 현장에 대한 정보는 이를 연구하는 연구자나 관심을 가진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태실이 위치했던 초안지는 일부만 문화재로 지정, 보존되어 관리되고 있는 상태라 대다수 비지정문화재임과 동시에 수풀이 우거지거나 진입로를 찾기 힘들어 현장을 답사하는데 난항을 겪는 경우가 상당하다. 더불어 태실을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단행본은 연구서를 제외하면 전무하며 일부 단행본은 단편적인 사실관계에 관한 오류를 기술하고 있어 교차검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웹상에서는 일부 태실 현장을 답사한 사람들에 의해 사진 자료 등이 제공되고 있기는 하나 여러 사이트에 분산되어 태실이 지니는 의미나 역사적 전개 등을 제대로 통찰하기 어렵다. | 하지만 태실에 대한 일련의 연구 성과나 현장에 대한 정보는 이를 연구하는 연구자나 관심을 가진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태실이 위치했던 초안지는 일부만 문화재로 지정, 보존되어 관리되고 있는 상태라 대다수 비지정문화재임과 동시에 수풀이 우거지거나 진입로를 찾기 힘들어 현장을 답사하는데 난항을 겪는 경우가 상당하다. 더불어 태실을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단행본은 연구서를 제외하면 전무하며 일부 단행본은 단편적인 사실관계에 관한 오류를 기술하고 있어 교차검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웹상에서는 일부 태실 현장을 답사한 사람들에 의해 사진 자료 등이 제공되고 있기는 하나 여러 사이트에 분산되어 태실이 지니는 의미나 역사적 전개 등을 제대로 통찰하기 어렵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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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자료 (PDF Download)== | ==발표 자료 (PDF Downloa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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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http://dh.aks.ac.kr/seosamneung/index.php/ 서삼릉 위키] | |
+ | * [http://dh.aks.ac.kr/seosamneung/index.php/온톨로지2.lst 조선왕실 태실 온톨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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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frame width="100%" height="800" src="http://dh.aks.ac.kr/~ssn/pavilion/SSN/SSN_PC/SSN_PC.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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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8일 (목) 07:26 기준 최신판
목차
조선왕실 태실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활용 연구 - 서삼릉 태실을 중심으로
전인혁 (한국학대학원 인문정보학 석사과정)
연구 개요
연구 목적
조선왕실 태실은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면서 20세기 초 급격한 변동을 겪게 된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500년 역사를 끝마친 조선왕실은 이왕직(李王職)에 의해 통제되면서 기존 왕실에서 행해지던 여러 의례가 축소 또는 폐지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이때 태실 역시 1928년부터 1934년에 이르기까지 보존과 관리의 명목으로 서삼릉으로 이안(移安)되었으며 전국 각지에 태실을 조성했던 초안지(初安地)는 민간에 불하되거나 현상이 크게 변경되는 등 적절한 보존과 관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왕실의 번영과 새로 태어난 생명의 미래를 염원하며 조성된 조선왕실 태실은 그렇게 본래의 역사적 의미를 크게 훼손당한 채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최근 훼손된 태실의 역사성을 복원하고 대중에게 그 의미를 다시 부각시키기 위해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019년 8월부터 12월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함께 「고양 서삼릉 내 묘역 및 태실 역사성 회복 연구」를 진행하여 서삼릉 소재 54기 태실의 초안지와 관련된 문헌 사료 및 현장 사진 자료를 확보하는 등 향후 태실 연구를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하였다. 또 2020년 1월 경기도는 그동안 문화재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태실을 보호 관리하고 새로운 문화자원으로 만들어 갈 보존 계획을 수립한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충청남도 또한 2020년 5월 「충청남도 태실문화재 실태 연구용역」 사업을 진행하여 태실에 대한 보존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태실에 대한 학술 조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그 역사경관적 의미가 재생되고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태실에 대한 일련의 연구 성과나 현장에 대한 정보는 이를 연구하는 연구자나 관심을 가진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태실이 위치했던 초안지는 일부만 문화재로 지정, 보존되어 관리되고 있는 상태라 대다수 비지정문화재임과 동시에 수풀이 우거지거나 진입로를 찾기 힘들어 현장을 답사하는데 난항을 겪는 경우가 상당하다. 더불어 태실을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단행본은 연구서를 제외하면 전무하며 일부 단행본은 단편적인 사실관계에 관한 오류를 기술하고 있어 교차검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웹상에서는 일부 태실 현장을 답사한 사람들에 의해 사진 자료 등이 제공되고 있기는 하나 여러 사이트에 분산되어 태실이 지니는 의미나 역사적 전개 등을 제대로 통찰하기 어렵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누구나 참조할 수 있고 축적된 연구 성과를 즉각 반영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주목하였으며, 디지털 환경 속에 서삼릉 소재 54기의 조선왕실 태실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 내용
본 연구는 조선왕실 태실이라는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이해를 위해, 조선시대 각 왕대별 태실의 조성과 그 제도적 추이를 연구대상 기초자료로 삼은 문헌자료를 통해 개괄하고 일제강점기 서삼릉으로 태실이 이안되는 과정까지 살펴본다.
이후 앞서 살펴본 조선왕실 태실, 그 가운데 서삼릉으로 이안된 54기의 태실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기 위한 기초 데이터 생성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한다. 조선왕실 태실이라는 지식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류하고 각 요소에 해당하는 정보 자원을 현장 조사를 통한 사진 및 영상자료와 문헌자료, 각 기관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등에서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은 메타데이터로 분류하고 이를 위키 문서로 작성하여 정리한다.
또한 조선왕실 태실이라는 대상 세계를 기술하기 위한 온톨로지(Ontology)를 설계한다. 앞서 정리된 메타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선왕실 태실의 지식을 기술하는 최소 단위가 될 노드(Node) 데이터를 유형(Class)별로 분류하고, 각 노드 유형에 맞는 속성(Attribute)과 관계성(Relation)을 규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위키 문서로 작성된 각 태실의 중요한 정보 사이의 의미적 연관관계를 보이는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그래프를 제작한다.
마지막으로 위키를 통해 구축된 데이터베이스의 활용 방법으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못했던 태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것이 또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목표를 둔다.
기대 효과 및 활용 방안
본 연구는 단순히 태실에 대한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태실이라는 대상을 매개로 한 여러 원천 자료나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유물, 태실이 위치한 초안지의 입지적 요건, 태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역사적 사건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조선왕실 태실의 백과사전적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시도이다. 이와 같은 접근이 조선왕실 태실의 실체에 보다 근접하고, 나아가 서삼릉 태실이 지닌 역사적 성격이 확장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연구 논문 목차
Ⅰ. 서론 1. 연구 배경 및 목적 2. 연구 방법 및 대상 3. 선행 연구 검토 Ⅱ. 조선왕실 태실의 역사적 전개 1. 조선 전기 태실의 조성과 제도의 확립 2. 조선 후기 태실 제도의 추이 3. 일제강점기 서삼릉 태실의 조성 Ⅲ. 조선왕실 태실 데이터 수집 및 정리 1. 문헌 자료 데이터 2. 인물 데이터 3. 장소 데이터 4. 사진·영상 자료 데이터 5. 메타데이터 정리 Ⅳ. 조선왕실 태실 온톨로지 설계 및 디지털 아카이브 구현 1. 클래스(Class) 및 속성(Attribute) 설계 2. 관계성(Relation) 설계 3. 데이터베이스 구현 Ⅴ. 조선왕실 태실 디지털 아카이브의 활용과 디지털 스토리텔링 1. 건국 시조의 탄생과 신화, 태조 태실 2. 역사적 실재와 기억의 변주곡, 단종 태실 3. 1934년 경평군 태실의 발견 4. 조선시대 안태사의 인적사항 추적 Ⅶ. 결론
발표 자료 (PDF Download)
시맨틱 데이터 구현 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