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Lab
(→정의) |
잔글 (판 1개를 가져왔습니다) |
(차이 없음)
|
2017년 6월 15일 (목) 12:22 기준 최신판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
|
대표명칭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
한자 |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
이칭 | 보각국사 정혜원융탑(普覺國師 定慧圓融塔) |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147 |
문화재 지정번호 | 국보 제197호 |
문화재 지정일 | 1979년 5월 22일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충주시 |
크기 | 높이 2.6m |
건립시대 | 조선 |
관련승려 | 혼수 |
관련탑비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靑龍寺址)에 있는 고려시대 말의 승려 보각국사 혼수(普覺國師 混修, 1320-1392)의 탑.
내용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靑龍寺址)에 있으며 보각국사(普覺國師)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普覺國師)(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쳤다. 우왕 초에 순천 송광사(松廣寺) 주지를 지내고 1383년(우왕 9) 국사(國師)가 되었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權近)이 비문을 짓고 김천택(金天澤)이 글씨를 써서 1394년(태조 3)에 세우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1]
조선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탑은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탑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2]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충주 청룡사지 | A는 B에 있다 |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혼수 |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 혼수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시각자료
갤러리
- BHST Cheongnyongsaji Bogak stupa-1.jpg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탑신 몸돌
주석
- ↑ "보각국사정혜원융탑(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
『두산백과』online . - ↑ "보각국사탑",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참고문헌
- 진홍섭,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보각국사정혜원융탑(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
『두산백과』online . - "보각국사탑",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