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의 귀신담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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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e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2월 5일 (월) 15:27 판 (새 문서: ==한국의 귀신담== ===이생규장전===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은 조선시대의 생육신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생육신 유응부(兪應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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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귀신담

이생규장전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은 조선시대의 생육신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생육신 유응부(兪應孚, ? ~ 1456년)가 쓴 한문 소설로 고려 공민왕 때 개성에 살던 이생(李生)이 주인공이다. 한글의 자유를 주장하고 인간정신의 해방을 강조한 작품이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간의 사랑을 다룬 명혼소설(冥婚小說)이라는 점에서 《금오신화》 중에 김시습, 유응부의 다른 작품인 만복사저포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국내의 것으로는 김집(金集, 1574 ~ 1656)의 수택본 한문소설집에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와 더불어 필사된 것이 있다.[1]

  • 줄거리

고려 때 개성에 살던 이생(李生)이라는 열 여덟 살의 수재(秀才)가 서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선죽리(善竹里)에 사는 대귀족의 딸인 최처녀를 보게 되었다. 최처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설렌 이생은 시를 적은 종이를 최처녀가 사는 집 담 안에 던졌고 최처녀 또한 이에 화답을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이생은 최진사의 집을 찾아 정략결혼을 맺기로 약속을 했다. 며칠간 최처녀와 시간을 보낸 이생은 그 이후에도 매일같이 최처녀의 집을 드나들었지만 아버지가 이를 알고 크게 꾸짖으며 다른 곳으로 쫓아버렸다.

최처녀는 이생이 개성을 떠난 지 여러 달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심해 몸져 누웠고 최처녀의 부모는 딸이 이생과 주고받은 시를 보고서야 병의 원인을 짐작했다. 최처녀의 부모는 이생의 집에 중매를 보내 자식들을 맺어주자고 청하고 이생의 부모도 이를 받아들여 두 사람은 혼례를 치렀다.

이생은 높은 벼슬에 올라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신축년에 홍건적의 난으로 양가 가족이 모두 흩어지고 그 와중에 최처녀도 겁탈당할 위기에 처해 도적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난리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온 이생이 죽은 아내를 다시 만나 그녀와 함께 죽은 부모의 유해를 수습하고 전과 같이 금슬좋게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최처녀는 더 이상 이승에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한 뒤 슬퍼하는 이생을 남겨두고 종적을 감추었다. 이생 또한 아내를 장사지낸 뒤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이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절개를 칭찬하였다.[2]

만복사저포기

조선 전기에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東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려 있는 5편 중 하나이다.국내의 것으로는 김집(金集)이 편찬한 한문소설집에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과 더불어 필사된 것이 있다.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그린 애정소설이며, 구조 유형상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시애소설(屍愛小說)이라고도 한다.[3]

  • 줄거리

전라도 남원에 사는 총각 양생(梁生)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의 구석방에서 외로이 지냈다. 배필 없음을 슬퍼하던 중에 부처와 저포놀이를 해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었다.그 처녀는 왜구의 난 중에 부모와 이별하고 정절을 지키며 3년간 궁벽한 곳에 묻혀서 있다가 배필을 구하던 터였다. 둘은 부부관계를 맺고 며칠간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양생은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딸의 대상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났다. 여기서 양생은 자기와 사랑을 나눈 여자가 3년 전에 죽은 그 집 딸의 혼령임을 알았다. 여자는 양생과 더불어 부모가 베푼 음식을 먹고 나서 저승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사라졌다. 양생은 홀로 귀가했다. 어느 날 밤에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은 타국에 가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당신도 불도를 닦아 윤회를 벗어나라고 했다. 양생은 여자를 그리워하며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며 지냈다. 그 마친 바를 알 수 없었다.[4]

중국의 귀신담

『요재지이』,<연성>

  • 줄거리

교씨(喬氏) 성을 가진 서생이 있었는데, 진녕(晉寧)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로 이름을 떨쳤지만 나이 스물이 넘도록 아무런 공명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남 돕는 일을 좋아했다. 연성은 사효렴의 사랑하는 딸로 자수에 능하고 시서(詩書)를 잘했으므로 시를 짓는 것으로 사위를 고르게 되었다. 그녀가 덕과 재주를 겸비한 교생을 택했을 때, 사효렴은 그가 가난한 것을 싫어하여 스스로 식언(食言)을 했다. 연성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교생을 칭찬하는 한편 할멈을 통해 지기 아버지가 보내주는 것처럼 가장하여 그의 학비를 보태주니, 교생은 그녀의 안목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생은 그녀에 대한 사모의 마음이 점점 깊어져서 연성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얼마 후 연성은 소금장수의 아들인 왕화성과 정혼하게 되었다. 연성은 교생에게 마음을 두었으나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이로 인해 병이 났다. 연성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남자의 가슴살을 필요로 하였는데, 왕화성이 이를 거절하자 사효렴은 가슴살을 주는 자를 사위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교생이 스스로 살을 바치지만 사효렴은 재차 식언(食言)을 하고 돈으로 교생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사효렴이 연성과 교생의 애정을 무시하고 끝내 연성을 소금장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자 연성의 병은 다시 도져 죽고 교생 또한 연성을 위해 슬퍼하다 죽어버렸다. 교생이 죽은 후 저승에서 생전의 친구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연성을 만나고 또한 함께 되살아나게 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한국학중앙연구원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한국학중앙연구원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