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강길(源綱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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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호막부의 5대 장군.

개설

1646년 1월 8일 강호막부의 3대 장군인 덕천가광(德川家光)의 4남으로 강호성 본성[本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덕송이며, 1653년 강길(綱吉)로 개명하였다. 1680년 8월 23일 강호막부 5대 장군이 되었다. 장군 취임 후 굴전정준(堀田正俊)을 대로(大老)로 등용하고 선대 장군인 덕천가강(德川家綱) 때 실추된 장군의 권위 회복에 노력하였다.

가계

덕천가광의 4남으로, 어머니는 가광의 측실 계창원(桂昌院)이다. 1704년 가광(家光)의 3남인 덕천강중(德川綱重)의 아들인 덕천가선(德川家宣)를 양자로 삼았다. 1709년에 63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자 가선이 장군직을 이어받았다.

활동 사항

1651년 4월 둘째형인 장송(長松, 후일의 덕천가강)과 함께 영지를 받아 근강(近江)·미농(美濃)·신농(信濃)·준하(駿河)·상야(上野) 등지의 150,000석 영주가 되었다. 1653년 8월 관례를 치르고 종3위중장(從三位中將)에 임명된 뒤 가강(家綱)의 이름 글자 중 하나를 하사받아 강길(綱吉)로 개명하였다. 1661년 8월 상야 관림(館林)의 번주로 250,000석의 영지와 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1680년 5월 8일 형인 4대 장군 덕천가강이 후사 없이 위독한 상황에 처하자 그의 후사로 내정되어 강호성의 둘째성[二ノ丸]에 들어갔다. 같은 달 가강이 사망하면서 8월 23일 내대신우근위대장(內大臣右近衛大將)의 직위를 받은 뒤 장군이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 대로(大老) 주정충청(酒井忠淸)이 강길의 후계를 선례에 따라 천황가에서 맞이하려고 하였으나, 노중(老中) 굴전정준이 강길의 옹립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후계자로 정해졌다고 한다.

강길의 장군 즉위 축하를 위하여 대마(對馬)를 통하여 1681년(숙종7) 6월 조선에 통신사 파견을 요청하였다(『숙종실록』 7년 6월 24일). 12월에는 대마도주 종의진(宗義眞)이 대마에 돌아온 것을 위문하기 위하여 대마에 건너갔던 문위역관변이표(卞爾表)와 한후원(韓後瑗) 등의 보고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사행절목강정(使行節目講定)이 있었다. 통신사 일행은 1682년 5월 8일 한양을 출발하였는데, 삼사(三使)에는 윤지완(尹趾完)·이언강(李彦綱)·박경후(朴慶後)가 임명되었으며, 총인원은 473명이었다(『숙종실록』 8년 5월 8일).

장군이 된 후 굴전정준을 대로(大老)로 등용하고 선대 장군인 가강 때 실추된 장군의 권위 회복에 노력하였다. 막부의 회계 감사를 위하여 감정음미역(勘定吟味役)의 제도를 도입하고 유능하지만 신분이 낮아 제대로 기용되지 못한 기본(旗本)들의 등용에 힘썼다. 적원중수(荻原重秀)는 이렇게 하여 등용된 인물이었다. 또한 막부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금지된 외양 대명(外樣大名) 중에서도 일부가 막부에 등용되어 중앙에 진출하였다.

또한 덕을 강조하는 문치정치(文治政治)를 더욱 강하게 추진하였다. 당대의 유학자인 임신독(林信篤)을 자주 초청하여 경서를 토론하고 사서와 주역을 막부의 가신들에게 강의하였을 뿐 아니라 유학의 중심지로 탕도 대성당(湯島大聖堂)을 건립하는 등 역대 장군들 가운데 가장 학문을 좋아한 장군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무가제법도를 통한 ‘충효’와 ‘예의’의 강조는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역할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 그의 치세에 문화적으로 원록시대(元祿時代)가 열리고 경제도 번성하는 한편 적수번(赤穗藩)의 무사들이 관리의 처소를 습격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동물의 생명을 중시하는 살생금지령을 발표해 많은 빈축을 샀으며 특히 개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개장군[犬公方]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1683년에 아들인 덕송(德松)이 다섯 살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1704년 가광(家光)의 3남으로, 갑부번(甲府藩)의 번주이자 재상인 덕천강중(德川綱重)의 아들인 덕천가선(德川家宣)을 양자로 삼았다. 1709년에 6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가선이 뒤를 이어 6대 장군이 되었다.

묘소

묘소는 동경(東京) 상야(上野)의 관영사(寬永寺)에 있다.

참고문헌

  • 『동사일록(東槎日錄)』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89.
  • 三宅英利, 『近世日朝關係史の硏究』, 文獻出版,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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