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성(羽林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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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별자리인 28수(宿) 가운데 실수(室宿)에 속한 별자리.

개설

우림성(羽林星)은 28수 가운데 실수에 속하며, 천자의 친위군으로 하늘의 군대를 의미한다. 천자의 군영을 지키고 방어하며, 군기(軍騎)를 맡아 천자를 보좌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영실성(營室星)과 동벽성(東壁星)의 남쪽에 있는데 서양 별자리의 물병자리, 물고기자리, 고래자리에 속하는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우림성과 관련된 천문 관측 기사를 78건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이 유성 관측 기록이며 달과 오행성 관측 기록도 있고 망기(芒氣) 관측 기록도 하나 보인다. 『고려사』「천문지(天文志)」에서도 우림성과 관련된 천문 관측 기사를 130건 정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림(羽林)’ 외에 ‘우(羽)’ 또는 ‘천군(天軍)’이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우림성’이라고 실려 있으며, 옛 천문에서는 ‘우림’, ‘우림군(羽林軍)’ 또는 ‘우림천군(羽林天軍)’이라는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우림성은 처음에는 하나의 독립된 별자리가 아니었다. 『삼가성경(三家星經)』과 『진서(晉書)』「천문지(天文志)」에서는 우림성과 누벽진성(壘壁陣星)을 하나의 별자리로 파악했다. 『송사(宋史)』「천문지(天文志)」에 와서야 우림성과 누벽진성을 독립된 별자리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송나라 이전까지는 우림성과 누벽진성을 한 별자리로 보았고, 송나라 이후에야 독립된 두 개의 별자리로 나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고천문에서는 하늘을 31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서 별자리를 배속시켜 분류하였는데, 그 분류는 시대별로 달랐다. 『보천가(步天歌)』 이후 삼원(三垣)과 28수의 별자리 분류 체제가 확립되면서 우림성은 28수 가운데 북방 7수의 실수에 속하였다. 그 이전인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에서는 우림성을 우림천군이라고 쓰고 북궁(北宮)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삼가성경』에는 석씨외관(石氏外官)에 속하는 것으로, 그리고 『진서』「천문지」에는 28수 외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였다.

천문분야론에 따르면, 우림성좌는 하늘을 열두 구역으로 나눈 십이성차(十二星次)의 추자(娵訾)의 차에 속하는데, 서양 황도십이궁의 물고기자리[雙魚宮]와 상응한다. 해가 추자의 차에 있을 때는 십이진(十二辰)의 해(亥)의 방향에 해당하는데, 시절은 음력 1월이 된다. 하늘의 분야에 대응하는 땅의 분야는 십이주국(十二州國)의 위(衛)나라와 병주(幷州)이다.

우림성의 별 45개는 셋씩 모여 15개의 무리를 이루어 영실성(營室星)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흩어져 분포한 모습이 군영에 설치된 군막과 닮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서는 우림성이 북락사문성(北落師門星)의 동북쪽, 누벽진성의 남쪽, 천창성(天倉星)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은 서양 별자리의 물병자리, 물고기자리, 고래자리에 해당한다.

우림성은 무관의 상을 본떠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삼은 것으로, 하늘의 천군이다. 기병(旗兵)을 담당하고 천자의 궁을 지키며 왕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실제로 지상에서의 우림군도 천자의 친위군으로, 무장을 하고 천자의 수레를 호위하며 시중을 들었던 사람 또는 그 관직을 가리킨다. 우림군은 서한(西漢) 무제(武帝) 때 처음으로 설치되었는데, 당나라에는 좌·우 우림위(羽林衛)가 있었고, 송나라에는 우림장군(羽林將軍), 명나라에는 우림위가 있었다. 우림이란 명칭은 하늘에 우림성이 있어서 그 이름을 취하여 우림이라 하였다. 또한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한 군인들의 자손들을 키워 우림관(羽林官)이라 하였는데, 수풀처럼 무성해져 나라를 위한 날개[羽翼]가 되기를 바라는 뜻이 들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에서도 우림위를 설치하였다. 우림위에는 첩(妾)의 자식 가운데 무예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 소속시키되 장수(將帥)로 3명을 두라고 하였다(『성종실록』 23년 4월 8일). 우림위는 성종 때 처음 설치되었다가 연산군 때 폐지되었는데, 중종 때 다시 복원되었다.

우림성이 무관(武官)과 관련된 별자리이므로 천문 현상도 이와 관련시켜 해석하였다. 우림성의 별들이 무리 지어 있으면 나라가 편안하고, 드물게 보이면 군대가 출동한다고 보았다. 우림성 안에 별들이 없으면 곧 군대가 출동하여 없는 것으로 천하가 전란에 휩쓸린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 『통지(通志)』 「천문략(天文略)」
  • 『한서(漢書)』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
  •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
  • 『고려사(高麗史)』 「천문지(天文志)」
  • 『송사(宋史)』 「천문지(天文志)」
  • 『보천가(步天歌)』
  • 『개원점경(開元占經)』
  • 『신의상법요(新儀象法要)』
  • 『천문류초(天文類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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