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공주(淑明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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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40년(인조 18)~1699년(숙종 25) = 60세]. 조선 제 17대 임금인 효종(孝宗)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장유(張維)의 딸로 효종의 정비(正妃)인 인선왕후(仁宣王后)이다. 친동생은 조선 제 18대 임금인 현종(顯宗)이다. 부마는 청송 심씨(靑松沈氏)청평위(靑平尉)심익현(沈益顯)이다. 인조(仁祖)의 손녀이자, 숙종(肅宗)의 친고모이기도 하다.

출생 및 혼인 생활

1640년(인조 18) 효종과 인선왕후의 1남 6녀 가운데 3녀로 태어난 숙명공주(淑明公主)는 13세가 되던 1652년(효종 3) 심지원(沈之源)의 아들 심익현과 혼인하였다.(『효종실록』 3년 5월 3일) 혼인 이후 인경궁(仁慶宮) 옛 터에 짓는 숙명공주의 집이 매우 사치스러워서 문제가 되었는데, 현종 대에 집을 보수할 때에도 그 규모가 상당히 컸으므로 다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효종실록』 4년 8월 19일),(『현종실록』 10년 9월 19일)

또한 숙종 대에 정승을 결정할 때 숙명공주는 언니 숙안공주(淑安公主)와 함께 숙종을 찾아가 남인(南人)조사석(趙師錫)의 임명에 대하여 언급하며 숙종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였다.(『숙종실록』 13년 9월 13일) 당시 숙명공주]와 숙안공주는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明聖王后)로 인해 출궁되었다가, 명성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재입궁한 장희빈(張禧嬪)이 숙종의 총애를 받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숙종실록』 12년 12월 10일),(『숙종실록』 13년 9월 13일) 이는 숙명공주와 숙안공주의 시가(媤家)는 서인(西人)이고, 장희빈은 남인과 결탁되어 있던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공주들이 장희빈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숙종은 처음 들을 때는 웃어 넘겼던 숙명공주와 숙안공주의 인사에 대한 언급을 새삼 지적하며 매우 불쾌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후 숙명공주와 숙안공주 측과 남인 측은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 때까지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였는데, 남인 측에서는 공주들을 살해하여야 근심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숙종실록』 20년 4월 1일),(『숙종실록』 20년 5월 23일) 그리고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숙청되고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숙명공주 등은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었다.

1699년(숙종 25) 숙명공주가 병이 들자 숙종이 직접 문병을 하였으나, 그해 3월 끝내 세상을 떠났다.(『숙종실록』 25년 2월 11일),(『숙종실록』 25년 3월 17일) 당시 숙명공주는 60세였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며, 부마 심익현과 합장되었다. 인선왕후로부터 가장 사랑받았던 부마 심익현은 숙명공주 보다 16년 빠른 1683년(숙종 9)에 세상을 떠났다.(『숙종실록』 9년 7월 6일)

숙명공주는 부마 심익현과의 사이에서 2남을 두었다. 1남은 심정보(沈廷輔)인데 주색(酒色)을 좋아하고, 용렬하여 식견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숙종 대인 1718년(숙종 44) 효종의 외손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이라며 중추부(中樞府)첨지사(僉知事)에 제수되기도 하였다.(『숙종실록』 44년 11월 2일) 2남은 심정협(沈廷協)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숙종실록보궐정오(肅宗實錄補闕正誤)』
  • 『국조보감(國朝寶鑑)』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송자대전(宋子大全)』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효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