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천군(白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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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남쪽 오늘날 연백평야 지역에 있으며 동쪽으로 개성, 북쪽으로 평산, 서쪽으로 연안과 접하는 지역에 설치되어 주민들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배천군[白川郡]은 황해도 남쪽 해안 지역의 연백평야에 있던 고을로 1413년(태종 13)에 군이 설치되었으며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도랍현(刀臘縣)이었다. 치악성(雉嶽城)이라 불리기도 했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에 구택(雊澤)으로 고쳤으며 해고군(海皐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는 백주(白州)라 하였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평주에 예속되었다가 1369년(고려 공민왕 18)에 다시 백주가 되었다.

조선시대 1413년에 배천[白川]으로 이름이 바뀌어 군(郡)으로 승격되었으며 경기도에서 황해도로 이속되었다. 한양에서 의주로 통하는 직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며, 해주 등 12읍의 세곡을 모아 경강으로 보내는 금곡포(金谷浦)가 있는 수운의 중심지였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문반 혹은 음서직 종5품 군수였으며, 별감 2명, 상정감관(詳定監官) 1명, 군관 25명, 아전 40명, 지인 20명, 사령 12명, 취수(吹手) 12명, 관노 14명, 관비 15명이 있었다. 군사는 시위군 73명, 영진군 77명, 선군 174명이었다.

변천

조선시대 중종 때 도둑질하던 자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일이 있어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군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개편할 때 해주부 배천군이 되었으며(『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전국을 13도로 다시 나누었을 때 황해도 배천군이 되었다. 1914년에 인근의 연안군과 합쳐 연백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황해도(黃海道) 백천군(白川郡)
  • 『여지도서(輿地圖書)』황해도(黃海道) 백천(白川)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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