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월(董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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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년 중국홍치제의 등극을 알리기 위하여 조선에 사신으로 온 명의 관리.

개설

동월은 부친을 일찍 여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지만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1469년 진사에 급제한 후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에 임명되었다. 이후 시독(侍讀)으로 승진해서 동궁강관(東宮講官)이 되었다. 명효종(孝宗)은 등극 후 그를 춘방(春坊) 우서자(右庶子)로 승진시키고 기린복(麒麟服)을 함께 하사하였다.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당시 왕과 신료들이 주었던 선물을 대부분 거부해 명성이 높았다. 조선에서는 그의 훌륭한 성품과 다른 환관 사신과는 달리 의례에 깊은 이해를 보여 준 그를 더욱 높이 평가하였다. 동월은 문장으로도 유명하였다.

조선에 파견되었을 때의 경험과 시문 등을 엮은 『조선부(朝鮮賦)』와 『조선잡지(朝鮮雜志)』를 저술로 남겼다. 『명 헌종실록(明 憲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이후 태상소경(太常少卿)에 임명되었다. 마지막에는 남공부상서(南工部尙書)에 임명되었다. 사후에 ‘문희(文僖)’라는 시호를 받았다.

동월은 자신의 능력을 내세워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드러나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욕심이 적어 검소하게 생활하였으며, 녹봉이 들어오면 항상 가족과 지인 중에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조선부』와 『조선잡지』 이외에도 『규봉문집(圭奉文集)』과 『사동일록(使東日錄)』 등의 저술을 남겼다. 이외에도 『문희집(文僖集)』 42권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활동 사항

동월은 1488년(홍치 1, 성종 19) 조선에 홍치제(弘治帝)의 등극을 알리는 반조정사(頒詔正使)로 임명되었다. 그는 사신으로 오기 전 만난 조선통사(通事)박효순(朴孝順)에게 성종의 나이와 조선까지의 거리 등을 물어보았다(『성종실록』 19년 윤1월 15일). 같은 해 2월 25일 동월은 부사(副使)왕창(王敞)과 두목(頭目) 14인(14명) 등을 인솔하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경내로 들어왔다. 당시 동월의 관직은 좌춘방우서자겸한림시강(左春防右庶子兼翰林侍講)이었고, 왕창의 관직은 공과우급사중(工科右給事中)이었다(『성종실록』 19년 2월 28일).

하지만 동월은 조선 관료들의 모든 행동을 엄격하게 제한하고자 해서 문제를 일으켰다. 무엇보다 조선 왕이 조서(詔書)와 칙서(勅書)를 맞이할 때 연(輦)을 타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문제를 야기하였다(『성종실록』 19년 3월 10일). 조선은 성종 이하 모든 대신들이 격렬하게 반발하였지만 결국 동월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성종은 조서를 맞이할 때에는 연을 타고, 칙서를 맞이할 때에는 말을 타는 것으로 동월과 의례 형식을 타협하였다(『성종실록』 19년 3월 12일).

동월은 3월 13일 조선 왕이 조서와 칙서를 맞이하는 의례를 시행하였다. 동월은 의례를 준행할 때 실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종이 보냈던 선물 등을 모두 거절하였다(『성종실록』 19년 3월 13일). 동월은 조선에서 제공하였던 선물 등을 거절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의주(義州)에서 사행단에 속해 있는 두목 등의 무역 행위도 금지시켰다(『성종실록』 19년 5월 7일).

저술 및 작품

『조선부』는 모두 464구의 부(賦)가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앞부분에는 조선의 위치와 지형, 풍속 등이 서술되었다. 중간 부분에는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부터 한양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이 기록되었다. 아울러 자신의 사신 활동과 연회 등에 관한 내용도 함께 수록되었다. 마지막 부분에는 성균관과 한양의 시가지, 한강 유람, 조선 백성들의 풍속과 조선의 산물 등에 관한 내용들이 수록되었다.

동월의 『조선부』는 출간되자마자 조선과 명 양국에서 폭넓게 읽혔다. 3년의 기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의 형식으로 쓰여 가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전서(四庫全書)』는 물론 『예장총서(預章叢書)』와 『국조전고(國朝典故)』에도 수록되었다. 조선의 자료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었다.

『조선잡지』는 『조선부』의 자주(自注) 형식을 따라 만들어진 글이었다. 『조선잡지』에 수록되어 있는 기사들은 『조선부』의 자주와 순서만 약간 다를 뿐, 체제와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였다. 따라서 『조선잡지』는 별도의 서적이라기보다는 『조선부』를 설명하기 위한 보충 자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명사고(明史稿)』
  • 『명사(明史)』
  • 『명통감(明通鑑)』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부(朝鮮賦)』
  • 『조선잡지(朝鮮雜志)』
  • 윤호진, 『조선부』, 까치글방, 1994.
  • 김한규, 『사조선록 연구-송·명·청 시대 조선 사행록의 사료적 가치-』,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1.
  • 신태영, 「명사 동월의 『조선부』에 나타난 조선 인식」, 『한문학보』 10, 우리한문학회, 2004.
  • 조영록, 「동월의 『조선부』에 대하여」, 『전해종교수화갑기념논총』,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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