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료소(救療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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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성들의 질병과 기근 구제를 위한 대민구료(對民救療)를 하던 임시 장소.

내용

조선시대의 구료(救療)는 의료적 구휼(救恤)을 의미하며, 실제 방법은 약과 음식 등을 병자와 기민(饑民)에게 제공하는 등의 기초적인 방식에서부터 의원의 치료를 포함한 전문적인 의료 방법까지 동원되었다. 구료소(救療所)는 이와 같은 구료 사업을 벌이기 위한 임시 장소로, 조선초기에는 사찰(寺刹)에 구료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구료소의 인력 역시 조선초기에는 승려와 함께 무당이 배치되어 백성들의 구활(救活)을 도왔다.

용례

始修築都城 太上王遣都摠制權希達 上遣摠制元閔生 奉宣醞 勞提調于太平館 開肅淸彰義二門 以通軍人出入之路 置救療所四處于都城東西 命惠民局提調韓尙德率醫六十人 大師坦宣率僧徒三百名 救療軍人之疾病傷折者 又命前留後呂稱 檢校參贊許衜監之(『세종실록』 4년 1월 15일)

飢民至京中者絡繹行乞於市 命設救療所於興福寺 設粥飮以給之 使副正尹誠之 僧坦宣掌其事 全活甚衆(『세종실록』 4년 9월 10일)

참고문헌

  • 김두종, 『한국의학사』, 탐구당, 1966.
  • 변정환, 「조선시대의 역병에 관련된 질병관과 구료시책」, 『한국과학사학회지』7(1),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