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지(藁精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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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벼·귀리 등의 단섬유 식물과 닥나무 등의 장섬유를 혼합하여 만든 종이.

개설

고정지(藁精紙)는 어디서나 구하기 쉬운 보리·벼·귀리 등을 원료로 만든 품질이 비교적 나쁘지 않은 종이이다. 제지 과정이 편리하기에 다량의 공급이 필요한 경우 손쉽게 지원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 전라도는 벼, 경상도는 보리, 북쪽 지방은 귀리 등을 고정지의 원료로 사용하였다. 반면 시기적으로는 조선후기로 갈수록 보리나 귀리의 짚 등은 적어지고 볏짚을 주로 사용하였다.

형태

고정지의 원료로는 고정(藁精)·고절(藁節)·고견(藁䅌)·모절(麰節)·맥간(麥稈)·맥갈(麥秸)·이맥(耳麥)·연맥(燕麥)·작맥(雀麥)·면(麵) 등이 있다. 고정·고절·고견은 벼를, 모절·맥간·맥갈은 보리를 뜻한다. 또한 이맥·연맥·작맥은 귀리를 지칭하며, 면은 밀을 의미한다. 즉 고정지의 주원료는 보리·밀·벼·귀리 등의 단섬유이다.

볏짚 등의 단섬유와 닥나무 등의 장섬유를 혼합하였는데, 단섬유인 고정의 비율은 책지(冊紙)의 경우 전체 20~50%로 사용하였고, 서화지(書畵紙)의 경우 70% 이상으로 혼합하였다. 일회용인 소지(燒紙) 등에 이용한 경우에는 강도(强度)의 중요성이 낮기 때문에 거의 90% 정도로 고정을 혼합하였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고정지의 중요한 용도는 서책 간행에 필요한 종이인 책지이다. 1434년(세종 16)에 『자치통감』을 인쇄하기 위해 300,000권, 즉 6,000,000장의 종이가 필요하였다. 6,000,000장이라는 다량의 종이가 일시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에서 고정지를 제조하여 공급하였다.(『세종실록』 16년 7월 16일) 이때의 고정지는 고절·모맥절(麰麥節)·죽피(竹皮)·마골(麻骨)을 닥과 5:1의 비율로 혼합하여 만들었다. 이것은 닥의 비용을 아끼면서 책을 대량 인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454년(단종 2)에도 닥나무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고정지를 사용하였다. 당시의 닥나무 생산이 종이의 소비에 비해 부족하였기 때문에 닥나무 껍질에 초절목피(草節木皮)를 섞어 종이를 만들어 썼다. 이때 제조한 종이가 잡초지(雜草紙), 즉 고정지이다. 닥나무 껍질 3냥에 초절목피 1근(斤: 16냥)을 혼합하였으므로 초절목피와 닥을 16:3의 비율로 혼합하였다.

참고문헌

  • 『용재총화(慵齋叢話)』
  • 정선영, 「고정지에 대한 연구」, 『서지학연구』3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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