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이객(喀爾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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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 유역과 중국의 요령성 신몽골족 자치현 일대에 거주하던 몽골의 한 부족.

개설

객이객은 몽골의 칼카(kalka)부를 말하였다. 이들은 요하 유역과 지금의 중국 요령성 신몽골족 자치현 일대에서 목축을 한 부족이었다. 동쪽에는 해서여진 여허[葉赫]부와 서쪽에는 차하르[察哈爾]부에 인접하였으며, 남쪽에는 광녕(廣寧)과 가깝고 북쪽에는 코르친[科爾沁]부가 위치하였다.

변천

원(元)의 붕괴 이후에 몽골 세력은 다얀 칸에 의하여 투멘[萬人隊]이라고 불리는 6개의 대부족으로 재편되어 고비사막 동북의 좌익과 고비사막 서남의 우익으로 구분되었다. 17세기 초 칼카는 북부 몽골 지역에서 투시예투 칸, 세첸 칸, 자삭투 칸 등에 의하여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져 각자의 세력을 유지하였는데, 이들은 칭기즈칸의 후예로서 서부 몽골오이라트 연맹과 서북부 몽골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였다. 칼카는 홍타이지가 차하르부의 릭단 칸[林丹 汗]을 병합한 이후 이들은 후금과 외교적 접촉을 하였다. 이후에 가서는 청의 외번이 되어 청나라의 권력구조 내부로 편입되었다.

청조에서는 편의상 막남 몽골 지역의 다섯 오톡 칼카를 내(內)칼카, 칼카 5부 혹은 내몽골 칼카로, 게레센제의 후예들이 시조인 7개 호쇼 칼카는 북(北)칼카·외(外)칼카 혹은 외몽골 칼카로 불러 다섯 오톡으로 구성된 내칼카와 구분하였다. 1785년에 건륭제가 즉위한 지 50년이 되었을 때, 조선에서도 사신을 파견하여 행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때 칼카부인으로 아직 연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 가운데 나이가 70~90세 이상인 자를 구분해서 상을 내리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조선의 사절은 이 지시를 조선에 전하였다(『정조실록』 9년 2월 14일).

참고문헌

  • 서정흠, 「명말 누르하치의 대몽고 정책과 그 성격」, 『안동사학』 2, 1996.
  • 이선애, 「외국(tulergi gurun)에서 외번(tulergi golo)으로-17세기 청-할하 관계-」, 『명청사연구』 43, 2015.
  • 이선애, 「청 초기 외번(tulergi gole) 형성과정과 이번원」,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