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패(號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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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을 부담하는 16세 이상의 남자가 지녀야 하는 신분 증명표.

내용

토지와 인구는 국가의 물적 토대 중에서도 기초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동의 가능성이 있는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호적 제도를 정비하였다. 호패(號牌)는 호적에 등재된 국역을 부담하는 장정(壯丁)의 총수와 거주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개인별로 발급하여 소지하게 한 신분 증명표이다. 호패는 신분에 따라 그 재질과 모양이 다르다. 『속대전』「호전」 호적조에는 2품 이상은 상아패[牙牌], 3품 이하 및 잡과 입격자는 뿔패[角牌], 생원·진사는 황양목패(黃楊木牌), 유품관(流品官) 잡직(雜職)과 사서인·서리·향리는 소목방패(小木方牌), 공천·사천과 가리(假吏)는 대목방패(大木方牌)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용례

定軍丁成籍之法 承樞府啓 今中國兵興 不可不慮 宜知國內人民之數 甲首助戶 擇實差定, 今日之急務也 凡中外人民 皆給號牌 因錄其名數而成籍如何 所耕多小 相考成籍如何 命三府會議 取可否於各司 議論紛紜 卒以考其所耕多小成籍事 啓聞行移(『태종실록』 2년 8월 1일) 300px

참고문헌

  • 申正熙, 「五家作統法小考」, 『대구사학』12·13, 대구사학회, 1977.
  • 李光麟, 「號牌考 -그 實施 變遷을 中心으로-」, 『백낙준박사환갑기념 국학논총』, 사상계사, 1955.
  • 정긍식, 「1625年 號牌事目에 대한 考察」, 청담최송화교수화갑기념 『현대공법학의 과제』, 박영사, 2002.
  • 崔石雲, 「世祖時의 號牌法施行」, 『향토서울』28, 서울시사편찬위원회,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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