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어류(朱子語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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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송대 학자인 주희(朱熹)가 강학하면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어록 모음집.

개설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송대 유학의 집대성자인 주희가 강학하면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어록 모음집으로 모두 140권이다.

『주자어류』는 1170년부터 1199년까지 근 30년간 97명이 기록한 주희의 강학 어록을 기록한 것인데, 그 중에는 4명의 무명씨도 있다. 대부분의 어록은 주희가 보지 못한 것이지만, 다만 보광(輔廣)이 기록한 내용의 일부분은 주희 본인이 검열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64명의 기록은 주희가 60세 이후 때의 어록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주희 만년의 관점이 더욱 성숙된 것이어서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편찬/발간 경위

어록의 초기 형태는 기록된 말들이 한결같지 않고, 여러 판본들 마다 분량도 각기 달랐으며, 또한 내용에도 편차가 있었고, 분류도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몇 차례 판각이 거듭될수록 오류도 점점 더 많아졌다.

주희가 죽은 후 이도전(李道傳)이 가정(嘉定) 8년(1215)에 『주자어록』 43권을 편집하여, 지주(池州)에서 간행하였다. 그 안에는 요덕명(廖德明) 등 주희의 제자 33명이 기록한 것이 수집되어 있다. 이도전의 동생 이성전(李性傳)은 또 1238년에 『주자어속록』 46권을 편집하여 요주에서 간행하였다.

또 채항(蔡抗)은 1249년에 『주자어후록』 26권을 편집하여, 요주에서 간행하였는데, 주희의 제자 양방 등 23명이 기록한 것을 수록했다. 오견(吳堅)은 1266년에 또 이전의 3 판본에서 아직 수집하지 못한 기록을 수집하여, 『주자어별록』을 편집하여, 건안에서 간행하였다. 또 황사의(黃士毅)는 1219년에 ‘지록(池錄)’을 기초로 증보하여, 『주자어류』 140권을 분류하고 편성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후속 자료를 보충하여 출판되다가, 남송 이종(理宗) 때 여정덕(黎靖德)이 각족 판본의 어록과 어류를 종합하여, 이동(異同)을 고찰하고, 중복된 것을 삭제하고, 더욱 수정하여, 황사의가 『주자어류』를 편집할 때 사용한 주제별 분류에 따라,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을 편집하였다.

서지 사항

140권 50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35.3cm, 가로 22.6cm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주자어류』는 주희의 이학(理學) 사상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주희는 제자들과 평소 왕래하면서, 학문을 토론하고 절차탁마하면서, 아무런 거리낌과 거리감을 두지 않았다. 언급된 주제들은 천리(天理), 인륜, 우주 자연, 독서와 실천, 경제와 세상사 등이 총망라되어 있으니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주자어류』의 편집 순서는 이론을 앞에 두고, 사건은 뒤에 실었다. 맨 앞에 이기, 성리, 귀신 등 세계의 본원 문제를 실었다. 그 다음은 심성, 정의(情意), 인의예지 등 도덕 윤리와 사람과 사물의 성명의 근원에 관한 토론을 실었다. 계속해서 지행(知行), 역행(力行), 독서 등 학문 방법론을 실었고, 그 다음에 『사서』ㆍ『오경』의 내용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이(理)의 본류를 고찰하고, 불교와 도교를 배척한 것을 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물과 세태에 대한 평론을 실었다. 이 가운데 『사서』에 관련된 내용이 51권을 차지하고, 『오경』에 관련된 내용이 29권을 차지한다.

주희의 다른 이론적인 저서와 비교하면, 『어류』는 그 자체로 독특한 점이 있다. 첫째, 일련의 주제들에 대한 주희 만년의 깊은 사색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초기 저작 속에 나오는 미성숙한 견해를 교정하여 주희의 사상의 진면목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사서(四書)』에 대한 견해는 상당히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둘째, 주제들에 대해 주희의 견해가 제자들과 대담 속에서 자세하고 충실하게 진술되어 있어, 결론적으로 요약된 내용이 주로 실려 있는 『문집(文集)』과 같은 저작 보다 상세하게 논점과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셋째, 토론의 주제가 광범하여 여러 측면에 걸쳐 주희 사상의 심도와 넓이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주희의 사상과 품격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된다. 이처럼 『어류』는 주희의 사상을 정밀하고 섬세하게 체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사상적 체계와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이다.

물론 주희의 사상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 있어, 『어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주희의 제자인 황간(黃幹)은 이렇게 말했다. “기록된 말이 반드시 스승이 전해준 본질을 다 얻은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서로 베껴 쓰면서, 본래의 진짜 모습을 상실한 것도 많을 것이다.”(‘지주에서 간행된 주자어류 후서(後序)’) 그는 또 “수시로 응답한 말을 가지고 평생을 거쳐 저작한 저서의 견해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청대의 많은 학자들은 '주자어류'는 제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믿을 수 없는 오류가 아주 많다고 주장하였으며, 안원(顔元)은 ‘주자어류 평(評)’을 써서 『주자어류』의 학술적 가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것은 『주자어류』가 간접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그 가치에 대해서 이처럼 다른 견해가 제기되는 것이다.

좀 다른 각도에서 이심전(李心傳)은 이렇게 말했다. “『어류』와 『사서집주』가 상이한 내용이 있는 경우 당연히 후자를 정설로 여겨야 한다. 주고받은 토론 내용으로 『집주』에서 언급하지 못한 것은 물론 『어류』를 참고로 삼을 수 있다. 또 『시경』과 『서경』에 관해서, 『어류』에 수록된 내용은 저서가 완성되기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응당 저서를 정설로 여겨야 한다. 또 책이 완성된 이후의 토론은 물론 『어류』의 내용이 옳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렇게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주희 만년의 핵심적인 말들이 매우 많다. 50 이전에는 제자들이 많지 않아서, 기록자가 겨우 3-4명이 있을 뿐이다. 남강과 절동에서 돌아온 이후 배우러 오는 제자들이 매우 많아져서, 가르치고 토론한 내용이 매우 상세하고 이론이 치밀하고, 노력이 곡진하여, 모두 주희 자신의 사상을 깊이 천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 강용중, 「언어학적 관점에서 본 《주자어류(朱子語類)》의 특징」, 『중국문학연구』 38권, 한국중문학회, 2009.
  • 강용중, 「『주자어류』의 언어학적 번역과 오역사례 연구」, 『중어중문학』 제47집, 한국중어중문학회, 2010.
  • 강용중, 「釋禪宗語錄和『朱子語類』所見的 ‘走作’」, 『중국문학연구』 제32집, 중국 문학연구회, 2012.
  • 김문식, 「조선본 『주자어류』의 간행과 활용」, 『사학지』 제43집, 단국대학교사학회, 2011.
  • 楊郭維茹, 「《朱子語類》表被動的「為」字式」, 『師大學報:語言與文學類』 Vol. 57 No. 1, 국립대만사범대학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