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呈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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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관원이 사직, 휴직, 체직을 요청하는 행위나, 그때 사용된 문서. 문서인 경우에는 정사장(呈辭狀)이라고도 함.

내용

관리들이 사직, 휴가를 받고자 할 때,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정사(呈辭)를 하여 정식으로 상관의 허락을 받았다. 중앙 관원의 경우 휴가를 신청할 경우에 모두 『전율통보』에 규정된 정사식에 의거하여 공식 문서로 작성되어 왕에게 올려졌던 반면, 지방관의 휴가는 수유소지(受由所志)로 관찰사에게 신청되었다. 정사를 올릴 수 있는 사유는 각 법전의 급가조(給假條)에 상세히 실려있다. 휴가 사유는 친병(親病), 근친(覲親), 소분(掃墳), 영분(榮墳), 분황(焚黃), 영친(榮親), 혼가(婚嫁), 장처(葬妻), 장처부모(葬妻父母), 신병(身病), 노친봉양(老親奉養), 침구(鍼灸), 목욕(沐浴), 귀장(歸葬), 가토(加土), 이장(移葬)이며 풍속의 변화에 따라서 허용되는 범위가 약간씩 덧붙여지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정기 휴가는 근친과 소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머지 친병, 노친 봉양 등은 모두 비정기 휴가라고 할 수 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근친은 3년에 1회, 7일을 머물 수 있었으나,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의하면 1년에 1회, 7일을 머무를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근친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은 모든 관원에게 다 해당되었다. 한편, 소분의 경우는 『은대조례』의 규정에 의하면 3품 이상의 고위 관직자, 청요직, 근신에 한정되었다. 『경국대전』에는 5년에 1회, 7일을 머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대전통편』에는 2년에 1회, 7일을 머물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머무는 기간인 7일은 오가는 기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친병인 경우의 급가 일수는 길이 먼 경우에는 70일, 가까운 거리인 경우에는 50일, 경기 지역일 경우에는 30일이며 여기에는 이동 일수가 포함되어 있다. 영친·영분·분황·혼가의 경우에는 7일을 머물 수 있으며, 처나 처부모를 장사 지낼 경우에는 15일을 머물 수 있었다. 부모나 조부모의 이상이나 귀장에는 20일을 머물 수 있었고, 백숙부모, 친형제나 외조부모의 귀장과 이장에는 17일을 머물 수 있으며 가토에는 7일을 머물 수 있었다. 그리고 목욕과 침구는 2품 이상 정경 대신만이 신청할 수 있었다.

용례

伏以 臣自拘海島 垂二十年 謬蒙明宗大王特命以近壤 伏遇主上殿下繼照之初 釋囚復官 命下同日 旋備邇列 重以嚴囚 臣不勝恇駭 奔馳謝恩 踧踖侍筵 犬馬之分已逾 烏鳥之私遽迫 呈辭受暇 竦戴南歸 得與父母相見(『선조실록』 1년 4월 10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은대편고(銀臺便考)』
  • 『은대조례(銀臺條例)』
  • 유지영, 「조선시대 관원의 呈辭와 그 사례」, 『藏書閣』 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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