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입문(醫學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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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년경 명나라 이천에 의하여 편찬된 후 조선에 전해져 의학 지침서로 활용된 초학 입문서.

개설

『의학입문(醫學入門)』은 1580년경에 명나라의 이천(李梴)에 의하여 처음 완성되어 중국에서 간행된 이후, 늦어도 1590년경에는 조선에 전해져 『동의보감(東醫寶鑑)』과 함께 조선후기 의학을 주도한 양대 의학서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직후 훈련도감활자로 처음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목판으로 중간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저자인 이천은 본디 유사(儒士)의 신분이었으나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자 4년간 두문불출하며 독학으로 의학을 공부하였다. 단계(丹溪)주진형(朱震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유순(劉純)의 『의경소학(醫經小學)』을 모태로 의학 이론을 정리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주자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의론을 전개한 대표적인 의가였다. 이러한 연유로 이천은 이 책의 습의규격(習醫規格)에서 ‘의학은 유학에서 나왔다[醫出於儒].’고 천명하면서 ‘의유동도(醫儒同道)’의적 시각을 견지하였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조선에서는 서애(西厓)유성룡(柳成龍)이 지은 『의학변증지남(醫學辨證指南)』과 『침구요결(鍼灸要訣)』 에 이 책의 내용이 처음 등장하였다. 『침구요결(鍼灸要訣)』은 『침경요결(鍼經要訣)』이라고도 한다. 이후 『동의보감』과 허준(許浚)의 저작들 그리고 『의림촬요(醫林撮要)』 증수(增修)에 이용되었으며, 1831년(순조 31)에는 의과 시험의 배강서(背講書)로 채택되었다.

서지 사항

가장 널리 보급된 판본은 대부분 ‘내국중교무인개간(內局重校戊寅改刊)’이라는 간기(刊記)가 붙은 8권 19책의 목판본이었다. 1820년(순조 20)에 쓴 김이교(金履喬)의 후서(後序)가 붙어 있으며, 오천근(吳天根)·현재덕(玄在德)·경집(慶輯)과 같은 내의들이 교정(校正)과 감인관(監印官)으로 활약하며 간행을 주도하였다.

조선간본으로는 만력후기초간본, 초간본의 번각목판본, 초기목판본의 보각중간본, 1820년(순조 20)의 내국(內局) 목판본, 고종초기 활자간본 등이 알려져 있다.

구성/내용

전서는 내집(內集)과 외집(外集)으로 크게 나뉘는데, 내집에는 보양·경락장부·진단·본초·침구 등 의학의 기초가 담겨 있고, 외집에는 상한·잡병·부인·소아·외과 등 임상과 처방 설명이 주류를 이루었다. 책의 편제뿐만 아니라 상한과 잡병, 내상과 외상 등 철저히 이분법적 논리 구조에 의거하여 질병을 분류한 점이 특색이었다. 또한 이 책의 정문은 가부(歌賦) 형식으로 되어 있어 독송(讀誦)하기에 매우 편리하기 때문에 맥결(脈訣)과 약성부(藥性賦) 등은 널리 애송되었다.

저자의 의학 사상의 기조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내집 수권에 실린 원도통설(原道統說)·음즐(陰騭)·보양(保養)·운기(運氣) 등의 논설이었다. 이 중 원도통설은 한유(韓愈)가 공맹을 유학의 정통으로 추숭하기 위하여 지은 ‘원도(原道)’에 빗대어 의학의 계통을 밝힌 것으로 대부분의 문장은 이탕경(李湯卿)의 『심인감주경(心印紺珠經)』을 모작(模作)한 것이었다.

보양설도 역시 대부분 『소문(素問)』과 『격치여론(格致餘論)』의 요지를 풀어 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피풍한(避風寒)·절로일(節勞逸)·계색욕(戒色慾)·박자미(薄滋味)’로 요약한 양생의 요점은 조선 사대부의 건강 수칙으로 통용될 정도로 널리 준용되었다.

또 음즐에서 세상의 모든 이치는 마음속의 한 생각[心之一念]에서 출발한다고 갈파하였으며, 음화론(陰火論)에서는 유가의 정심(正心)·수심(收心)·양심(養心)이 망동하는 화(火)를 가로막기 위한 수심양성(收心養性)의 방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유가적 논리 구조를 의학적 양생론에 대입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이제마(李濟馬)는 의원론(醫源論)에서 역대 의가 중 장중경(張仲景)·주굉(朱肱)·허준 다음으로 의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칭송하였다.

이외에도 그의 의학사적 시각 또한 조선 의학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 한 예로 현종 무렵 『의림촬요』를 증보할 때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를 모범으로 옮겨 싣고 양예수(楊禮壽)와 허준을 본국명의(本國明醫)조에 올려놓았다. 일반적으로 17세기 이후 의학 이론은 『의학입문』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임상 처방은 『동의보감』을 중시하는 풍토가 정착되었다. 특히 상한(傷寒)병의 치료에서는 『동의보감』의 상한문보다는 『의학입문』의 상한문을 주로 읽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초사본(抄寫本)이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 동양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동양의학대사전』, 경희대학교 출판국, 1999.
  • 안상우, 「左入門 右寶鑑―『醫學入門』」, 『고의서산책』 97회, 민족의학신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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