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장포(升帳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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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사 훈련의 방식인 열무(閱武)에 사용하던 명호포(明號砲)의 하나.

개설

승장포는 조선시대 군사를 훈련하는 열무에 사용하던 명호포의 하나이다. 명호포는 『병학지남(兵學指南)』에 의하면, 군사 훈련 중에 어떤 호령을 내리려 할 때에 포를 먼저 한 번 울려 군사들에게 다음 동작을 지시하는 신호로 사용된다고 한다. 명호포를 울리고 난 뒤에는 징과 북 그리고 군대를 지휘하고 호령할 때 쓰는 군기(軍旗)인 고초기(高招旗) 등을 사용하여 명령을 내려서 군사의 움직임을 명령한다. 호포 소리를 들으면, 모든 군사들과 지휘관들은 어떤 색깔의 깃발이 올려져 있는가를 보고 또 어떤 징과 북 소리가 들리는가를 식별하여 이에 따라 다음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이다. 『홍재전서(弘齋全書)』의 「예진총방총서(隸陣總方總叙)」를 보면, 임금이 장전(帳殿)에 오름[升帳]을 군사들에게 알릴 때 선전관이 꿇어앉아 승장포를 쏠 것을 아뢴 다음, 징을 두 번 울려 대취타(大吹打)를 연주한다고 되어 있다. 『병학지남』에는 승장포를 세 번 쏘아 올린 다음에는 즉시 대취타를 울린다고 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숙종대인 1679년 9월에 실시한 열무는 노량의 교장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때는 승장포를 쏘고 깃발을 올린 다음에 호각을 불어 관기(官旗)를 모았으며, 포 쏘는 소리와 함께 진세를 펼치고 일본군으로 가장한 군사들로 편성한 가왜(假倭) 부대와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싸우는 형상을 만들며 군사를 훈련시켰다(『숙종실록』 5년 9월 11일). 영조대인 1744년 3월에는 교외에서 관무재(觀武才)를 시행하였는데, 이때는 영문(營門)을 조금 여는 소개문(小開門)과 승장포 이하의 의식은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영조실록』 20년 3월 16일). 그리고 1754년 5월에는 갑주를 갖추고 명정문에 나아가 승장포를 쏘고 숙정패(肅靜牌)를 세우고 소개문한 다음 대취타를 울렸다고 한다(『영조실록』 30년 5월 30일).

참고문헌

  • 『병학지남(兵學指南)』
  • 『홍재전서(弘齋全書)』
  • 백기인, 「조선후기 국왕의 열무 시행과 그 성격」, 『한국정치외교사논총』27-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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