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舍那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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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에 동전을 주조했던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의 절.

개설

사나사(舍那寺)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용문산에 있는 절이다. 923년(고려 태조 6) 대경(大鏡)이라는 승려가 제자 융천(融闡)과 함께 창건하였으며, 삼층석탑을 조성하였다. 1367년(고려 공민왕 16)에는 보우(普愚) 대사가 중창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인 세종대에는 동전(銅錢)을 주조하는 주전소가 설치되어 동전의 주원료인 사찰의 큰 종과 구리로 만든 기둥을 모아서 이 절로 수송하였다.

내용 및 특징

고려초기에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 조성한 삼층석탑은 사라지고 현재는 고려중기에 세운 높이 2.8m의 삼층석탑과 1386년(고려 우왕 12)에 세운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과 원증국사석종비(圓證國師石鐘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가 있다. 원증 국사는 고려말의 고승 태고보우의 시호(諡號)이다. 원증국사석종비는 공민왕이 보우를 국사에 봉하고 그 출신지인 익화현(益和縣)을 양근군(楊根郡)으로 승격시킨 것을 기념해 세운 비로, 정도전(鄭道傳)이 비문을 지었다.

조선전기의 사나사는 동전 주조소로서 역할을 하였다. 1424년(세종 6)에는 동전 주전에 필요한 구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호조에 보냈다. 특히 주원료인 구리의 마련은 이미 헐린 절에 남아 있는 큰 종과 당간(幢竿)과 같은 동주(銅柱)에서 취할 것을 제안하였다(『세종실록』 6년 3월 16일). 이후 사나사에 설치된 주전소는 동전의 연료인 구리 및 노동력의 공급이 어려워 폐지되었다.

변천

사나사는 1367년에 태고보우(太古普愚)가 140여 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그 후 1698년(숙종 24) 덕조(德照)가 다시 지었으며, 1907년(광무 11) 의병과 관군이 싸우던 중에 모두 불에 탔다. 이후 법당과 조사전을 지으면서 사세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 다시 사찰이 불타버렸다. 1993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적광전(大寂光殿)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미타전을 새로 지었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24 :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탐구당, 2003.
  • 김영태, 『한국불교사』, 경서원, 2008.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일조각,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