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각(文源閣)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사고전서』를 수장하기 위하여 설립한 청나라 7개의 황실 도서관의 하나로, 중국 북경 원명원 안에 존재했던 누각.

개설

문원각은『사고전서(四庫全書)』를 수장하기 위하여 건립한 7개의 사고전서루 가운데 하나로 북경 원명원 안에 설치하였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게 원명원(圓明園)이 약탈당할 때 문원각도 소실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청나라는 북경과 심양 그리고 열하 세 지역에 네 군데의 황가(皇家) 장서각을 건설하였는데, 자금성의 문연각(文淵閣), 열하 피서산장(避暑山莊)의 문진각(文津閣), 심양 고궁의 문소각(文溯閣), 그리고 문원각이 바로 그것이다.

문원각은 건륭제(乾隆帝)의 명령으로 중국 절강성 영파(寧波)에 있는 천일각(天一閣)을 본떠 조성하였는데, 1774년(청 건륭 39)에 짓기 시작하여 1784년에 완성되었다. 건물 외관과 세부는 천일각과 동일하였지만, 규모는 2배 정도, 높이는 3층으로 확장하였다. 조성하는 과정에서 문원각의 주위 환경도 세심하게 배려하였다. 주 건물 전방에는 높이 50m, 너비 23m의 장방형 못을 파서 수많은 금붕어를 길렀다. 이 장방형 못은 방화용 저수지였다. 이 못 한가운데에 높이 10m가량의 바위에 각종 조각을 새긴 영봉(靈峰)을 세워 놓았다. 주 건물 부근에는 어떠한 나무도 심지 않았는데, 이는 병충해로부터 문원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건륭제는 문원각이 완공되기 전부터 대리석에 한 편의 비문을 지어 문원각 주 건물 동쪽 정자 안에 두고 영원히 전하게 하는 등 애정을 쏟았다.

건륭제는 1775년에 『사고전서』 제3차 서사본이 완성되자, 문원각 안에 수장하도록 하였다. 조선은 『사고전서』의 완성과 보관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듣고 있었다. 1784년 겨울에 『사고전서』 4부를 베끼는 일이 끝나 문연각·문원각·문진각·문소각 등의 전각에 갈라서 보관하였으며, 『사고전서』는 매 부마다 모두 36,000권이나 된다는 것이었다(『정조실록』 9년 4월 19일).

문원각의 최하층의 중앙구역에는 경부(經部) 및 목록과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두었으며, 중간층은 사부(史部) 전적을 수장하였다. 그리고 최상층에는 자부(子部)와 집부(集部)를 두었다. 그 안의 서적들은 녹색·홍색·백색·흑색을 사용해 범주를 구별하여 식별하는 데 편리하게 만들었다. 지하층의 난간이 있는 전랑(前廊)은 앞의 공간을 터서 출입처로 삼았고 입구 안쪽에 사다리를 통해 2층 장서로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변천

1860년 10월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불에 타 소실되었다.

참고문헌

  • 왕롱주 지음, 김승룡·이정선 옮김,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 한숲, 2015.
  • 위안싱페이 저, 장연·김호림 옮김, 『중국문명대시야』, 김영사, 200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