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서명(問安書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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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에 태황제, 황제, 황후에게 큰 행사나 연말연시에 문안을 드릴 때 서명한 일.

개설

태황제나 황제, 황후의 탄신일이나 황제의 순행 후, 연말이나 연초 등에 태황제, 황제, 황후를 배알하거나 문안한 인물들은 자신의 직함과 성명을 서명록에 자필로 기재하였다(『순종실록』2년 9월 18일).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문안서명록을 통해 당시 어떤 인물들이 어떠한 직함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문안서명록은 주로 1908년(융희 2)에서 1910년(융희 4)까지의 것으로 외국인의 문안서명도 있으며 특히 일본인 관료의 문안서명이 점차 늘어난 것은 당시 일본인이 국정에 깊이 관여했던 상황을 반영한다.

연원 및 변천

문안서명은 태황제, 황제, 황후를 배알 또는 문안한 사람이 문안부(問安簿)에 자신의 관직과 이름을 친필 서명하는 것으로, 서명이 이루어진 날짜를 보면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통상적으로 1908년과 1909년(융희 3) 12월 31일, 1909년과 1910년의 1월 1일 등 제석(除夕)과 원조(元朝)의 연말연시에 문안서명을 하였다. 특정한 날짜의 연례행사로는 고종의 탄신일, 순종의 탄신일,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탄신일에 문안서명을 하였다. 그밖에는 순종이 황제에 즉위한 뒤인 1907년(융희 1) 9월 17일, 순종이 태묘(太廟)에 친행(親行)하고 돌아온 뒤, 순종의 남순행(南巡幸)과 서순행(西巡幸) 기간과 순행에서 돌아온 다음 등 특별한 행차나 행사가 이루어진 뒤에도 문안서명을 하였다. 또 순종이 서순행한 기간 동안에는 의주, 신의주, 평양, 개성 등 행재소에도 문안하여 서명하도록 하였다. 문안서명 가운데 현재 서명록이 남아 있거나 문헌 기록이 있는 것은 모두 순종이 즉위한 뒤인 1907년 7월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의 광무 연간에도 문안은 이루어졌으나 특별히 서명록에 친필 서명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문안서명은 순종이 황제에 즉위한 이후에 황실의 행사에 관원들이 참여하도록 한 것으로 당시 유력한 관원들의 직위와 성명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문안서명록은 소속 관청이 같은 경우 같은 필체의 서명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대리서명도 일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때로 문안부를 관리한 사람이 전체적으로 정리하여 기록한 경우도 있다.

절차 및 내용

문안서명은 궁내부(宮內府)에서 행사 후 문안서명이 있음을 내각(內閣)에 통첩하여, 내각에서 각 부, 원, 청에 알리면 해당 관원들이 정해진 날짜와 시각, 장소에 와서 문안서명록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연말연시의 문안이나 순종이 궐 밖에 행차하고 돌아온 경우에는 대개 다음 날에 인정전(仁政殿) 현관에서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문안서명을 하도록 하였다. 1908년 5월 6일 순종의 태묘 친행 뒤에는 다음 날에 문안서명을 하도록 알렸으며 1909년 4월 5일 동적전(東籍田)에 행차한 뒤에도 다음 날인 6일에 인정전 현관에서 문안서명이 이루어졌다. 황후의 경우 수원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에 행계하였다가 환어한 다음 날에 역시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인정전 현관에서 문안서명을 하도록 하였다. 황제가 장기간 궐 밖에 행차하였던 순행 기간에는 순종이 머물렀던 행재소에서 문안서명을 하도록 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문안서명록에는 날짜별로 문안한 관리들의 직책과 성명이 기록되어 있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1908년 12월 31일에 태황제인 고종에게는 내각 총리대신(總理大臣)이완용(李完用)·내부 대신(大臣)송병준(宋秉畯)부터 육군보병(陸軍步兵) 참위(參尉) 김승원·주전원(主殿院) 경(卿)이겸제(李謙濟) 등 총 268명이 문안서명하였으며, 다음 날인 1909년 1월 1일의 원조 문안은 궁내부 촉탁기사(囑託技師) 후지키 반조[藤木萬藏]·제실회계감사원(帝室會計監査院) 감사관(監査官) 서주보(徐周輔)부터 종2품 서유성(徐有成)·경시(警視) 아이하라 히코키치[相原彦吉〕 등 총 250여 명이 서명하였다. 당시 미국총영사, 프랑스총영사, 러시아총영사 등이 자필로 또는 서명록 관리인의 필체로 서명한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이 시기는 통감부(統監府) 시기로서 1908년 이후에는 일본인 관료들이 대거 등용되었는데, 서명은 당시 일인 관료들의 직책 및 성명을 알 수 있는 자료도 된다. 이 시기는 고종의 강제 양위 뒤 순종이 즉위하여 순종의 행차 및 황후를 널리 알리고 인지하도록 한 시기로서, 관료들이 궁궐에 가서 황제나 황후에게 문안서명을 하게 하는 것을 통해 새 황제의 권위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대한제국관보(大韓帝國官報)』
  • 『황성신문(皇城新聞)』
  • 『태황제폐하어전문안서명록(太皇帝陛下御前問安署名錄)』
  • 『황태자폐하예전문안서명록(皇太子陛下睿前問安署名錄)』
  • 『황후폐하어전문안서명록(皇后陛下御前問安署名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