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현(聞慶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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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관산현에서 기원하여 오늘날까지 현재 경상북도 문경군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문경현(聞慶縣)은 신라시대의 관산현(冠山縣)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문경현으로 개명되었으며, 고령군(古寧郡: 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일원)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문희군(聞喜郡)이 되었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문경군(聞慶郡)으로 개칭하고 상주(尙州)의 속군(屬郡)이 되었고, 이후 문경현이 되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감무(監務)가 파견되고 가은현(加恩縣)을 소속시켰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에 감무를 현감(縣監)으로 개칭하였고, 1416년(태종 16)에 호계현(虎溪縣)을 합병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문경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문경현은 신라시대에 관산현이라 불렸다. 신라 경덕왕 때 문경현(聞慶縣)으로 개칭했으며, 신라 9주(九州) 중 상주(尙州)에 속했던 고령군의 영현으로 편성되었다. 후삼국시기에는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으로도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문희군(聞喜郡)이라 하였다가, 1018년에 문경군이라 하고 상주의 속현이 되었으며, 이후 문경현이 되었다. 1390년부터 감무가 파견되었으며 가은현을 소속시켰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문경현이라 불렸다. 1413년에 전국의 감무를 현감으로 개칭할 때 문경감무도 문경현감이 되었으며, 1416년에는 호계현을 합병하였다(『태종실록』 16년 9월 29일).

조직 및 역할

신라시대에 문경현은 고령군(古寧郡)의 영현으로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 문경군은 상주에 소속된 속군이었다. 속군인 문경군에는 중앙에서 별도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으며, 상주에 파견된 지방관이 문경군을 관할하였다. 대신 문경군에는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문경현의 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문경현에는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문경에는 6품의 음관(蔭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27명, 인리(人吏) 32명, 지인(知印) 14명, 사령(使令) 15명, 군뢰(軍牢) 30명, 관노(官奴) 19명, 관비(官婢) 18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문경현은 1416년에 호계현을 합병한 이후 조선시대 내내 연혁은 거의 변동이 없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문경군으로 바뀌어 안동부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문경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문경군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에 문경현의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읍 상리 지역에 위치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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