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同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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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과거 시험에 함께 합격한 사람.

개설

같은 방목(榜目)에 명단이 오른 사람이라는 뜻으로 같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을 말하였다. 동방끼리 서로 우의가 두터워 형제처럼 지냈으며 따로 방회(榜會)를 열어 일생 동안 유대감을 유지하였다.

내용 및 특징

같은 해 같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을 동방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동기생과 같은 의미였다. 같은 동방이라 해도 장원을 존대하는 것이 관례여서 장원에게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장원이라고 불렀다(『선조수정실록』 7년 2월 1일). 장원이 눈에 뜨이면 즉시 쫓아가서 절을 하였고, 나란히 서서 걷거나 앉는 일이 없었다.

동방끼리는 방회를 열어 친목을 도모하고 유대감을 유지하였다. 심수경(沈守慶)은 계묘년(1543년) 사마시에 합격한 동방과 매월 돌아가며 방회를 열었는데 임진왜란으로 흩어졌다가 1594년 봄에 서울에 돌아오니 생존한 사람은 3명뿐이었다. 이들은 1595년 9월에 방회를 열어 회포를 풀고 소회를 시로 남겼다. 방회에 모인 동방들은 시를 짓거나 방회도(榜會圖)를 그려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동방 중에는 형제 동방이 있었다. 형제가 같은 과거에 합격한 것을 연벽(聯璧)이라 하고 쌍련(雙聯)이라고도 불렀다. 방목 말미의 부록에 형제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 놓았다. 형제간에 동방인 경우는 상당히 많았으나 부자간에는 동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부자가 동방인 경우에는 아들을 다음 번 과거에 응방하도록 하였다. 부자 동방이 한 번 있었는데 1717년(숙종 43) 온양정시(溫陽庭試)에 장원급제한 이유춘(李囿春)과 을과 1위로 급제한 아버지 이성채(李星彩)의 경우였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아들이 장원한 연고로 숙종의 특명으로 급제가 내려졌다(『숙종실록』 43년 8월 8일).

참고문헌

  • 『견한잡록(遣閑雜錄)』
  • 최진옥, 『조선시대 생원 진사 연구』, 집문당, 1998.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people.aks.ac.kr/index.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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