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용(南景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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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04년(숙종 30)∼1762년(영조 38) = 59세.]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 자(字)는 백근(伯謹)이다.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거주지는 춘천(春川)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남격(南格)이고, 어머니 윤씨(尹氏)는 윤흥돈(尹興敦)의 딸이다. 우암(寓庵) 송시열(宋時烈)⋅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문인(門人)이다. [『동춘당집(同春堂集)』 속집 권12 부록]

영조 시대 활동

1741년(영조 17) 사마시(司馬試) 생원과(生員科)에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8세였다.[<사마방목>]

1753년(영조 29) 제릉참봉(齊陵參奉)에 임명되었다가, 1755년(영조 31) 종묘 부봉사(副奉事)가 되었다.

1762년(영조 38) 남인의 재상 조재호(趙載浩)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보호하려고 하다가, 노론(老論)에 의하여 함경도 종성(鐘城)으로 유배당하여 사사(賜死)되었는데, 조재호를 지지하던 남경용이 엄홍복(嚴弘福)⋅유채(柳綵) 등과 함께 사도세자를 보호하고 노론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다가, 백성들을 미혹시켰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1790년(정조 14) 손자 남백승(南百昇)이 정조에게 조부 남경용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여 마침내 신원(伸寃)되었다.[『정조실록』 14년 2월 14일 1번째기사]

묘소와 후손

묘소는 강원도 춘천(春川)에 있다.

부인 김씨(金氏)는 김준갑(金俊甲)의 딸인데, 아들은 남급(南圾)이고, 손자는 남백응(南百膺)⋅남백승(南百昇)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동춘당집(同春堂集)』
  • 『손재집(損齋集)』
  • 『태을암집(太乙菴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