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록시(光祿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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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 시기에 제사 혹은 연회의 제수용품이나 음식을 담당하는 관청.

개설

국가의 제사가 있을 때 희생 및 제수용품을 준비하거나 원단(元旦)·만수(萬壽)·동지(冬至) 및 국가의 혼례(婚禮)의 경우 연회를 준비하는 관청이었다. 진·한대에 궁정 숙위(宿衛) 및 시종들의 장관으로서 낭중령(郎中令)이 있었는데 북제(北齊)시대에 이르러 광록시에 경(卿)과 소경(少卿)을 두었고 황실의 음식을 전담하며 그 성격이 뚜렷해졌다. 명·청 시기에는 광록시경(光祿寺卿)·소경(少卿)·승(丞)·주부(主簿)를 두었고 그 아래 대관(大官)·진수(珍羞)·양온(良醖)·장해(掌醢)의 부서가 있어서 제사나 각종 연회에 제수용품이나 희생물 그리고 음식 등을 준비하고 분배하는 일을 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명 건국 이전인 1367년(오왕 원년) 원사관(院使官)을 설치하고 그 아래로 음식을 관장하는 상식(尙食)·상예(尙醴) 두 부서를 두었다. 1368년(홍무 원년) 광록시에 경·소경을 두고 그 기구로 대관·진수·양온·장해의 부서를 두었다. 국가의 제사가 있을 때 광록시에서는 희생을 직접 살피고 제사가 끝나면 제사에 쓰인 고기 등을 각급 아문에 돌렸다. 원단·만수·동지 및 국가 황실의 혼례가 있을 때 모두 연회를 준비하였다. 또한 상례에는 음식과 제수용품을 준비하였으며 승·도사 등이 경을 외우는 경우에도 그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외에도 광록시에서는 관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나 공가에서 필요로 하는 각 물건은 모두 아문의 공문에 근거에 따라 분배하였고 연종연(年終宴: 한 해를 보내며 베푸는 연회)에는 조공을 바치러 온 몽골 사절에게 음식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조선의 사절 역시 연종연 등에 참여하면서 광록시로부터 설음식 및 잔칫상을 받았다(『정조실록』 12년 3월 26일)(『정조실록』 12년 3월 26일).

조직 및 역할

광록시경·소경·승·주부 각 1명씩을 두었다. 광록시경은 제사·조회(朝會)·연향주례(宴鄉酒醴)의 음식 관련의 일을 맡아 그 준비와 출납의 일을 맡았고 소경은 그 일을 보좌하였다. 각 부서 중 태관서(太官署)는 사당이나 연회에 제공할 음식을 담당하였고 진수서(珍羞署)는 제사·조회·빈객을 위한 여러 음식을 준비하였다. 양온서(良醞署)은(는) 태묘(太廟)에 제사를 지낼 술을 담당하며 장혜서(掌醢署)는 젓갈과 식초 절임 채소 등을 담당하였다.

[변천] 명청시대

진(秦)·한(漢)대에 궁정 숙위 및 시종들의 장관으로서 낭중령(郎中令)이 있었다. 한(漢)무제대에 광록훈(光祿勳)을 설치하였는데 동한(東漢)대에 다시 낭중령의 이름을 회복하였다. 위·진과 남조의 송·제 및 북위 모두 낭중령의 명칭이 사용되었다. 북제시대에 이르러 광록시를 설치하였는데 경과 소경을 두어 황실의 음식을 전담하며 그 성격이 뚜렷해졌다. 수대의 광록시는 태관(太官)·효장(肴藏)·양온(良醞)·장혜(掌醢)의 네 부서를 거느렸다. 당대의 제도도 수대와 비슷하였지만 소관 부서였던 효장의 이름을 진수(珍羞)로 바꾸었다. 명·청시대에는 당제와 같았는데 다만 태관의 명칭을 대관(大官)이라고 한 것만 달랐다. 광록시 아래 각 기구에는 각각 서정(署正)·서승(署丞)과 함께 사생사(司牲司)·사목국(司牧局)·은고(銀庫)등의 담당관이 있었다. 북경 천도 후 남경에도 북경과 같이 광록시의 관제가 존재하였다. 청대에는 명의 제도를 이어 1644년 광록시가 설치되었는데, 1661년 이후 예부(禮部)에 속하였다가 1671년(강희 10)년 예부에서 독립되었다. 1906년(광서 32) 예부에서 관할하였다.

참고문헌

  • 俞鹿年 編著, 『中國官制大辭典』, 黑龍江人民出版社,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