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휘전(敬徽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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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 있던 경종의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신주를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혼전의 존재 기간은 왕과 왕후에 따라 달랐으며, 왕후도 왕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승하하느냐에 따라 존재 기간이 같지 않았다. 왕과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반면, 왕보다 먼저 승하한 왕후는 3년상이 아닌 1년상인 기년상(期年喪)으로 치러져서 11개월에 연제(練祭)를 행하고 13개월에 상제(祥祭)를 행하며 15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냈다. 왕후의 신주는 배우자인 왕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부묘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담제가 끝난 후에도 왕후의 신주는 혼전에 남아 있었다. 왕이 승하하여 3년상을 마친 후 함께 부묘하였다.

경휘전은 경종의 계비(繼妃) 선의왕후의 혼전이다. 선의왕후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어유구(魚有龜)의 딸이다. 선의왕후는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에 해당하였다. 1730년(영조 6)에 선의왕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경휘(敬徽)’로 정하고(『영조실록』 6년 7월 6일), 5개월 뒤 경종의 의릉(懿陵)에 부장(祔葬)하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의 경종 신실(神室)에 부묘할 때까지 경휘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730년 6월 29일 선의왕후가 경덕궁의 어조당(魚藻堂)에서 승하하자 경덕궁의 광명전(光明殿)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5개월 뒤 10월에 의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다음 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영조실록』 6년 10월 20일). 이때 조성한 혼전명이 경휘전이다.

혼전은 처음에 경덕궁의 읍화당(浥和堂)으로 정하여 개수(改修)하는 공역을 크게 벌였으나 끝내 완결 짓지 못하여, 다시 창경궁의 편전(便殿)인 문정전(文政殿)으로 고쳐 정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경휘전이 후일 경희궁인 경덕궁 안에 있었다고 한다. 혼전이 존재한 동안 경휘전은 선의왕후를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선의왕후의 시신을 의릉에 부장한 그날 산릉(山陵)에서 초우제(初虞祭)를 지냈다. 다음 날 문정전에 마련한 경휘전에 신주를 봉안하고 재우제(再虞祭)를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혼전에서 거행하는 일반적인 의식 절차를 밟았다. 곧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모두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 대상제(大祥祭), 담제를 거행하였다.

그 밖에 조석상식(朝夕上食), 사시(四時) 및 납(臘) 제사, 속절(俗節) 및 삭망(朔望) 제사를 경휘전에서 지냈다. 사시는 춘·하·추·동, 납일은 동지(冬至) 후 세 번째 미일(未日), 속절은 정조(正朝)·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동지, 삭망은 초하루와 보름을 말한다.

경휘전에서 거행한 의절 가운데 기존의 것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부묘하기 하루 전에 부묘하겠다는 뜻을 혼전에 고하는 ‘고제(告祭)’를 지낼 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거하여 ‘잔(盞)’을 사용하지 않고 ‘작(爵)’을 사용하였다.

1732년(영조 8) 8월 10일 선의왕후의 신주를 경휘전에서 옮겨 와서 태묘(太廟)에 부묘하였다. 따라서 경휘전은 선의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730년 10월 20일부터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732년 8월 10일까지 창경궁의 문정전에 설치되었다.

변천

혼전은 신주를 부묘한 뒤에는 철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경휘전이 있었던 창경궁의 문정전은 이후에도 왕이나 왕후의 혼전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紀)』
  • 『춘관통고(春官通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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