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약정각서(韓日約定覺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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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대한제국의 경찰권을 뺏기 위하여 대한제국 정부와 맺은 각서.

개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경찰권을 빼앗아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고자 양국 정부 간에 체결한 각서이다. 1908년 11월 한국 주차 일본군 참모장으로 부임한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 소장은 대한제국의 경찰 기관을 일본 헌병의 아래에 두려는 계책을 세웠다. 1910년 아카시는 헌병과 경찰 조직이 통일되지 않으면 군사령관의 지휘가 어렵다며 대한제국 경찰권의 박탈을 데라우치 통감에게 요청하였다. 이는 그가 1910년 6월 한국 주차 헌병대 사령관에 부임하면서 이는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당시 대한제국 정례 각의에서 탁지대신 고영희, 학무대신 이용식 등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들이 한국의 사법 및 감옥 사무를 일본에 인계할 때와 마찬가지로 각서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1910년 6월 24일에 내각 총리대신서리(內閣總理大臣署理) 내부대신(內部大臣) 박제순(朴齊純)과 통감(統監)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각서를 체결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일제가 1910년 6월 대한제국 정부가 마지막 무력 장치였던 경찰권을 장악하고자 기도한 각서이다.

내용

조약의 전문에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한국의 경찰제도를 완전히 개선하고 한국 재정(財政)의 기초를 공고히 할 목적에서 이 조관(條款)을 약정한다고 되어 있다. 경찰 사무를 위탁하는 각서의 제1조는 한국의 경찰제도가 완비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 한국 정부는 경찰 사무를 일본국 정부에 위탁한다는 것이다. 제2조는 한국 황궁(皇宮) 경찰 사무에 관해서는 필요에 따라 궁내대신(宮內大臣)이 당해 주무관(主務官)에게 임시로 협의하여 처리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약문은 각기 본국 정부의 위임을 받아 각서를 한글과 일본어 각 2도(度)를 작성하여 이를 교환하고 뒷날의 증거로 삼기 위하여 이름을 적고 조인(調印)하였다(『순종실록』 3년 6월 24일).

변천

대한제국 경찰권이 일본군에 장악되면서 무단통치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헌병은 군사경찰의 역할뿐만 아니라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을 겸하게 되었으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고, 이러한 불법적인 권한을 통하여 의병 체포 및 탄압을 마구 행사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하였다. 헌병경찰이 발족한 이후 경찰 수는 8,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들은 개항장 시가지, 철도선 부근, 각 읍 등 의병의 주요 거점에 배치되었다. 근대 경찰이 내무행정도 유지하는 조직이었음에도 일제는 헌병경찰을 한국민을 무력적으로 억압하는 식민도구로 이용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1967.
  • 운노 후쿠쥬, 정재정 역, 『한국 병합사 연구』, 논형, 2008.
  •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 임경석·김영수·이항준 공편, 『한국 근대 외교사전』,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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