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당이군대관(豐唐二郡代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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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정시대(室町時代, [무로마치시대])에 대마도의 풍기군 등 2개군의 조세 징수 등을 담당하던 지방관.

내용

대관은 겸창(鎌倉, [가마쿠라])시대부터 실정시대에 영가(領家)·무가(武家) 등에서 주군을 대신하여 사무를 취급하는 자를 칭하였다. 그 후 실정시대 중기부터는 수호(守護)의 대관을 군대(郡代)·대대관(大代官)·군봉행(郡奉行)이라 부르고, 지두(地頭)의 대관만을 대관(代官)으로 칭하였다. 그중 군대는 주로 민정을 담당하는 경찰에 해당하며, 대관은 조세의 징수를 담당하였다.

풍당이군의 풍(豊)은 풍기군(豊崎郡: 對馬市 上對馬町과 上縣町의 북쪽 지역)을, 당(唐)은 당군(唐郡: 對馬市 上對馬町 唐舟志를 포함하는 지역)을 지칭하였다. 기록상으로 당군은 1476년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1478년 이후에는 풍기군에 흡수된 것으로 생각된다.

풍당이군대관 성씨(盛氏)는 아마 종성준(宗盛俊)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성준은 1469년(예종 1)에 도항하여 접대를 허락받았으며, 특히 1515년(중종 10)에는 표류인을 송환한 공으로 세견선 1선을 정약하였다. 또한 종성준은 1470년(성종 1)부터 1522년(중종 17)까지 대마주수호대관(對馬州守護代官), 풍당2군태수(豊唐二郡太守), 풍기수(豊崎守), 원중수(越中守), 능등수(能登守) 등으로 칭하면서 조선에 도항하였다. 『해동제국기』에 풍기군수(豊崎郡守)종성준은 종정국(宗貞國)의 배다른 형[異母兄]으로, 1468년(세조 14)에 사신을 보내 내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용례

(南)袞等又議啓曰 今次日本國王使臣所騎船 凡四隻 而海東紀內 國王使有副船或至三船云, 則其一隻 乃數外也 可勿接待 (중략) 豐唐二郡代官盛氏則元有歲遣船 今其所送三萬要所騎船 亦以歲遣數內 接待爲當(『중종실록』 17년 2월 14일)

참고문헌

  •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佐伯弘次, 「中世」 『上對馬町誌』,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