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만국박람회(法國巴璃萬國博覽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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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로 대한제국이 한국관을 짓고 농산물과 공예품을 출시한 만국박람회.

개설

대한제국이 참가한 파리 만국박람회는 1900년 프랑스 파리의 상 드 마르스 지역 일원에서 각국의 상품과 문화적인 물품을 모아 전시한 행사였다. 20세기의 첫해에 열린 이 행사는 ‘백년전(百年展)’과 ‘현대전(現代展)’으로 나누어 ‘백년전’에서는 지난 100년간의 산업, 예술, 과학기술을 회고하고 이를 통하여 ‘현대전’에서 20세기를 전망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각 나라에서는 전시관을 꾸며 이러한 박람회의 취지에 부응하였으며, 대한제국에서도 한국관을 건립하여 농업·광산·상업 등 산업 생산품과 복식, 가구, 공예품 및 예술품을 출품하였다.

연원 및 변천

만국박람회는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수정궁 대박람회를 기점으로 근대 유럽에서 각 나라의 산업 물품을 모아 전 세계의 산업과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획된 전시이다. 파리에서는 1855년·1867년·1889년에도 만국박람회가 열렸으나 대한제국에서는 1900년의 박람회에 공식적으로 요청을 받고 참가하였다.

절차 및 내용

1900년의 파리 만국박람회는 4월 14일 개막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893년 이폴리트 프랑뎅조선 주재 프랑스 공사를 통하여 프랑스외무부에서 보낸 공문으로 참가를 요청하였으며, 조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1896년 1월 프랑스 정부는 조선 주재 프랑스 서리공사르페브르를 통하여 ‘예술품 및 공산품 세계만국박람회’에 조선을 정식으로 초청하였으며 조선정부는 상인들을 인솔할 공식 대표를 파견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1896년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프랑스전권공사 겸 총영사로 임명된 뒤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조선에서는 1897년 1월 민영환을 프랑스 주재 특사 및 전권공사로 임명하였으나 여러 상황으로 인하여 직접 부임하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1897년 6월 상인 루리나를 파리 주재 한국 총영사로 임명하여 현지에서의 진행을 하도록 하였다.

1898년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 참가 준비위원회와 파리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한국관 건설을 후원하기로 하였던 클레옹 남작의 사망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미므렐 백작의 후원으로 공식 전시관과 토속 전시관을 꾸미려던 처음의 계획보다는 다소 축소하여 한국관 건설을 진행하였다.

대한제국 대표로 참가한 민영환은 인부 2명과 함께 파리에 도착하여 전시관 건설을 도왔다. 경복궁 근정전을 본뜬 형태의 전시관의 설계도는 현재 프랑스 국립사료보관소에 보존되어 있으며 프랑스 지리학회에는 당시 전시 사진들도 있다. 대한제국관에는 가마에 탄 인물, 왕의 모자, 무기, 가죽제품, 목조각과 도자기, 해금과 거문고, 북등의 악기와 자개 외에 설탕과 농산물 등도 포함되어 있어 대한제국의 다양한 상품과 공예품 들이 있었다. 파리 만국박람회의 출품은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국가 홍보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점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은 농산물 가공식품으로 대상을 받았으며 2개의 금메달과 10개의 은메달, 5개의 동메달, 3개의 장려상을 받았다. 물품들은 일부를 판매하고 남은 것은 프랑스 현지의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한국 물품은 정부에서만 출품한 것이 아니고 콜랭 드 플랑시가 소장한 한국의 책과 앨범, 자수 명주, 가구, 무기, 표범 가죽 등도 출품되어 진열되었다. 엔지니어인 그리유는 장롱, 화장대, 장신구와 보석을, 중국 주재 무관 비달은 금고, 궤, 장롱을, 멘느 박사는 자개 상감 철모와 철제 병기 등을 전시하였다. 또한 한국 물품의 전시와는 별도로 1899년에 대한제국을 방문하여 고종의 유화 초상을 그린 휴벗 보스의 고종 초상이 인류민속관에 전시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대학교 박물관, 프랑스 국립극동연구원 편, 『서울의 추억: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 고려대학교 박물관, 2006.
  • 서울역사박물관 편, 『정동 1900』, 서울역사박물관, 2012.
  • 이각규, 『한국의 근대박람회』, 커뮤니케이션북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