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통리기무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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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고종 연간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 등에 설치된 관직.

개설

1881년(고종 18) 통리기무아문에 처음 주사(主事)라는 관직이 설치된 이후 통리군국사무아문 등 여러 관서에 설치되었다. 사신의 파견이나 외국 사신의 접대 등을 담당하였다.

담당 직무

고종 연간에 주사가 처음 설치된 것은 1881년 1월 10일에 통리기무아문의 낭청을 주사와 부주사로 개편하면서부터이다(『고종실록』 18년 1월 10일). 이후에도 통리기무군국아문을 비롯해 친군위(親軍衛),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내무부(內務府) 등을 비롯해 1894년의 관제 개정 때에는 의정부에 31명이 설치되었다(『고종실록』 31년 6월 28일). 또한 1894년 7월에는 한성부 소속의 판관과 주부를 모두 주사로 개칭하였고(『고종실록』 31년 7월 18일), 같은 해 7월에 이루어진 궁내부와 종정부, 종백부의 관제 정비 시에 궁내부에도 주사를 두었다. 하위 관서인 승선원이나 규장각 등에도 상서주사(尙瑞主事)·비서주사(秘書主事)·품계주사(品階主事)·도화주사(圖畵主事)·사자주사(寫字主事) 등의 이름을 띠고 주사가 설치되었다. 주사는 사신으로 차출되어 파견되거나 왕의 거둥 시에 수종으로 참여하였고, 종사관으로 차출되어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등 소속 관서의 실무 업무를 전담하였다.

변천

통리기무아문에 설치된 주사는 정원이 규정되지 않고 수시로 설치되어 운영되었기에 각종 위원(委員)이나 사사(司事)와 함께 불필요한 관직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고종실록』 24년 8월 15일). 그럼에도 주사는 폐지되지 않고 대한제국까지 존속되었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