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육로통상장정(朝俄陸路通商章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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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고종 25)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 개항장 승인과 두만강 통행을 통한 무역 관련 조항이 포함된 통상조약.

개설

1866년(고종 3) 러시아가 경원부 인근 두만강에 이르러 통상을 요구한 이후 20년이 지난 뒤 양국이 정식으로 통상조약을 맺었다(『고종실록』 3년 12월 12일). 1884년(고종 21) 윤5월 러시아흠차전권대신베베르가 서울에 와서 고종을 알현하고 조선 측 전권대신인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김병시와 조아조약(朝俄條約)을 체결한 지 4년 만에 러시아가 조선의 무역항을 추가하고 자국 세력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추진한 통상장정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884년 조선과 러시아가 국교를 맺고 통상조약을 조인하던 시기에 청국의 길림과 조선 간에 무역규정이 체결되었다. 당시 청국은 길림 지방정부가 조선 정부와 무역장정을 조인하게 하였는데, 길림조선상민수시무역장정(吉林朝鮮商民隨時貿易章程)의 전문에는 “조선은 오랫동안 번국(藩國)으로 있으면서 힘써 조공을 바쳐 왔다.”는 문구를 삽입하여 국제적으로 청국이 조선을 속방(屬邦)으로 삼고 있음을 천명하고자 하였다(『고종실록』 21년 5월 26일). 이후 조선은 서양 제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조약을 조인하면서 청국의 속방이 아닌 것을 강조하고 자주독립국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였다. 1888년 조선과 러시아의 무역장정에도 청국의 연호가 아닌 “대조선국 개국 497년 7월 13일”이라고 하여 독립국임을 표방하고 있다. 다만 조선이 외국과 체결한 통상장정은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조선에 불리한 부분이 많았다. 예컨대 내지 통행권과 상권, 조선 화폐의 이용 여부, 무기의 소지와 재판권 등을 조선이 좌우하지 못하는 점에서 불평등조약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내용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조병식(趙秉式)과 흠명종2품공사대신(欽命從二品公使大臣)베베르([韋貝], Weber, Karl Ivanovich)가 상의해 결정한 내용은 8관(款)으로 제1관과 2관에는 조선이 러시아에 거주와 통상을 허가한 한양·양화진·제물포·원산·부산·경흥의 관리와 규정을 설명하였다. 러시아인의 체류 공간과 권한, 조선법 적용 등이 주요 내용이다. 3관과 4관, 5관은 양국의 무역 방법과 법 준수 사항으로 불법품 및 금수품의 소지와 압류 문제, 세금과 수수료, 허가증 관련 등이다. 6관은 양 국민 사이의 소송과 법 적용, 수사 및 체포에 대한 것이다. 7관은 국경선 사이 이동과 지형에 대한 조사이며, 8관과 9관은 이 장정의 작성 문자는 러시아어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과, 5년간을 시행 기간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변천

두만강을 사이에 둔 함경도와 러시아 연해주 사이의 무역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연해주는 농산물, 축산품과 해산물, 염류(鹽類) 등을 함경도에서 수입하는 것이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대한제국 관보(大韓帝國 官報)』
  • 『주한일본공사관일기(駐韓日本公使館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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