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章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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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을 의미하는 만주어 장긴[janggin, 章京]의 한자 명칭.

개설

장긴은 장군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지만, 군사 지휘관을 뜻하는 장관(將官)에 가까운 말이다. 한어 발음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동안 ‘지양기윤(jiyang giyun)’이라고 불렀고, 이를 다시 한자로 음역하면서 장긴이 되었다. 초기에는 팔기의 지휘관을 어전([額眞], ejen)이라고 불렀으나, 이후에는 대부분 장긴으로 고치게 되었다.

내용 및 특징

장긴은 주로 청대의 군사 조직인 팔기제(八旗制)의 장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팔기는 300명 정도의 군사로 구성되는 니루([牛彔], niru)와 5개의 니루로 구성된 잘란([甲喇], jalan), 5개의 잘란으로 구성된 구사([固山], gūsa), 즉 기(旗) 등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구사의 지휘관은 구사 어전([固山額眞=도통(都統)], gūsa ejen)이었고, 그 아래에는 머이런 어전([梅勒額眞=부도통(副都統)], meiren i ejen)이 있었으며, 잘란과 니루에는 각각 잘란 어전([甲喇額眞=참령(參領)], jalan ejen)과 니루 어전([牛彔額眞=좌령(佐領)], nirui ejen)이 있었다. 이 중 머이런 어전은 머이런 장긴([梅勒章京], meiren i janggin), 잘란 어전은 잘란 장긴([甲喇章京], jalan janggin)으로, 니루 어전은 니루 장긴([牛彔章京], niru janggin)으로 변화하였다.

이상과 같이 장긴은 주로 팔기제의 장관들을 이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니루에서 구사에 이르는 팔기제는 상하위의 제대라 수직적이고 분명한 지휘 체계하에 놓여 있었고, 이로 인하여 상황에 따른 유기적인 활용이 가능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며 장긴은 곧 각 제대의 지휘관이었다.

한 예로 1654년(효종 5)에 나타나는 ‘앙방장(昻邦章)’이라는 것은 ‘크다’는 의미의 만주어 암바(amba)에 장군을 뜻하는 장(將)을 더한 것으로 곧 대장(大將)을 의미하였다(『효종실록』 5년 2월 2일). 효종대 조선에서는 머이런 장긴 호사(胡傻)가 채삼(採蔘)과 관련한 일로 방문한 일이 있고(『효종실록』 3년 12월 18일), 화약의 매매와 관련하여 봉황성의 장긴이 조선 사신을 수색한 사실이 확인되었다(『효종실록』 8년 3월 28일).

청대에 장긴은 관원(官員)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었다(『숙종실록』 37년 3월 5일). 숙종대에는 채삼이나 범월(犯越), 혹은 강력 사건과 관련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봉황성과 울라의 장긴이 조사를 담당하기도 하였다(『숙종실록』 37년 6월 6일)(『숙종실록』 38년 6월 10일). 이들은 군사 지휘관으로서 활동한 것이 아니라, 청의 관원으로서 조선 문제를 처리한 것이었다.

참고문헌

  • 『만문노당(滿文老檔)』
  • 『청사고(淸史稿)』
  • 『대청회전(大淸會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