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읍성(蔚山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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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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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울산읍성 |
한글표제 | 울산읍성 |
한자표제 | 蔚山邑城 |
상위어 | 읍성(邑城) |
관련어 | 정유재란(丁酉再亂), 이극배(李克培), 울산읍(蔚山邑), 석성(石城) |
분야 | 정치/군사·국방/방어시설 |
유형 | 건축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곽낙현 |
장소 | 울산 중구 |
관련 인물 | 이극배(李克培)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울산읍성(蔚山邑城)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7년 5월 23일, 『성종실록』 8년 10월 29일, 『성종실록』 8년 10월 29일 |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된 울산읍을 둘러싼 성.
개설
울산읍성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고려시대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조선 성종 때에 수축하였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위치 및 용도
원래 성곽의 위치는 현재의 함월산 남쪽인 중구 북정동, 교동, 성남동, 옥교동에 걸쳐 있었다.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큰 성이었다. 조선 성종 때 석성(石城)으로 개축되었고 규모가 커졌다.
변천 및 현황
고려시대에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1385년(고려 우왕 11)에 처음으로 축조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476년(성종 7)에 병조 판서 이극배(李克培)의 보고로 다시 축조되었고(『성종실록』 7년 5월 23일) 이듬해 1477년(성종 8) 10월에 완성되었다(『성종실록』 8년 10월 29일).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왜군이 울산읍성을 허물면서 사라져버렸으며, 그 후 성의 복원을 보지 못하고 무성곽(無城郭)의 고을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동헌 일원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울산 중구청에서 울산읍성 복원 사업을 위한 예산을 2012년부터 확보하여, 동서남북 성문 복원과 역사공원 조성에 국비 950억 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 1,900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역사문화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복원할 예정이다.
형태
읍성은 높이가 15척(약 4.5m), 둘레 3,639척(약 1103m)에 이르렀다고 한다(『성종실록』 8년 10월 29일).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문화유적총람』하, 문화재관리국, 1977.
- 『전국읍성조사』, 문화재관리국,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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