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복정(榮福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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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한강 일대를 향유하기 위해 지은 정자.

개설

영복정(榮福亭)은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讓寧大君)이 만년에 세운 별장으로 이곳에서 한강을 조망하며 풍류를 즐겼다. 세조가 이 정자의 이름을 지어 줬다. 일제강점기 때 홍수로 인해 유실되었다.

위치 및 용도

영복정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인 서강(西江) 북쪽 언덕에 위치하였다. 한강 경관을 조망하며 여가를 즐기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왕이 방문하여 조선(漕船)을 살펴보기도 하였다(『성종실록』 6년 7월 8일).

변천 및 현황

영복정은 세조 때 마포한강변 산기슭에 지은 정자이다. 세조가 이곳에 행차하였다가 ‘영복정’이라 명명하고 친필로 현판을 써 준 후, 한 세상에 영화롭고 백 년에 복 받는다는 뜻의 ‘영일세 복백년(榮一世福百年)’이라고 그 뜻을 풀어 주었다(『세조실록』 5년 6월 1일).

영복정이 있던 서강 일대에는 고려시대부터 많은 사람이 뱃놀이를 즐겼다. 신선이 유람한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경치가 빼어난 선유봉(仙遊峯)과 함께 이 일대의 경관은 일품이었다. 특히 서강은 북쪽으로 와우산(臥牛山)을 등지고 앞으로는 한강의 밤섬을 조망할 수 있었으며, 여의도와 영등포 평원이 훤히 내다보였다. 또한 동으로는 남산, 동남쪽 원거리에는 기장산, 남쪽으로는 관악산을 관망하기에 적격이었다. 따라서 이 일대에는 다수의 정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1925년 대홍수로 대부분의 정자가 유실 또는 파괴되었다.

관련사건 및 일화

1468년(세조 14)에 고령군(高靈君)신숙주(申叔舟), 상당군(上黨君)한명회(韓明澮), 능성군(綾城君)구치관(具致寬), 영의정(領議政)조석문(曺錫文) 등이 명을 받고 영복정에 가서 조선을 점검하였다. 이때 세조는 우승지(右承旨)어세겸(魚世謙)에게 명하여 선온(宣醞)을 가지고 가서 주게 하였으며, 신숙주 등이 물고기 수 마리를 잡아 올렸다(『세조실록』 14년 6월 17일). 1475년(성종 6)에 성종이 서교(西郊)에 거둥할 때 영복정에 올라 조선을 보고는 배가 몇 척이나 되는가를 묻고 이를 지키고 관리하는 자들에게 술을 내렸다(『성종실록』 6년 7월 8일).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한경지략(漢京識略)』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한강사(漢江史)』,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5.
  • 이경재, 『한양이야기』, 가람기획,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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