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력(永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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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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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영력 |
한글표제 | 영력 |
한자표제 | 永曆 |
분야 | 연호 |
유형 | 연호 |
지역 | 중국(中國) |
시대 | 명(明) |
왕대 | 영명왕(永明王) |
집필자 | 김가람 |
사용지역 | 중국-명 |
사용왕대 | 영명왕 |
사용기간 | 1647년~1662년(영명왕1~영명왕16)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영력(永曆) |
중국(中國) 명(明)나라 영명왕(永明王) 대에 사용한 연호(1647년~1662년).
개설
중국 명나라의 제 20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영명왕이 사용한 연호이다(1647년~1662년).
영명왕은 연호인 영력(永曆)을 본 따 영력제(永曆帝) 또는 영력 황제(永曆皇帝)라고도 불리는데, 청(淸)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각지로 피신을 다니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가 미얀마로 피신을 하였으나, 미얀마 왕이 그를 붙잡아 청국에 넘겨주었고, 이듬해 영명왕이 죽음으로써 명나라는 멸망하였다.
조선(朝鮮)은 인조(仁祖)25년부터 현종(顯宗)3년까지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인조실록(仁祖實錄)』이 아닌 『효종실록(孝宗實錄)』에서부터 영력 연호를 찾을 수 있는데, 이때에서야 영명왕의 행적을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영명왕은 피신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들 또한 영명왕의 안녕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로 이 과정에서 영력 연호도 등장한다.
한편 『정조실록(正祖實錄)』정조24년(1800년) 윤 4월 29일자 기사에서는 조선이 청나라와 사대관계(事大關係)를 맺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실제로는 명나라를 정통으로 여기고 있다는 속마음을 영력 연호 사용과 연관하여 비추고 있기도 하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명사(明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