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신편(演機新編)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연기신편 |
한글표제 | 연기신편 |
한자표제 | 演機新編 |
분야 | 병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현종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안명로 |
간행처 | |
간행년일 | 1660 |
권책수 | 3권 3책 |
사용활자 | 필사본 |
표제 | 연기신편(演機新編) |
소장처 |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연기신편(演機新編) |
이 책은 1660년(현종 1) 안명로(安命老, 1620~?)가 편찬한 병서다.
개설
이 책은 1660년 진법(陣法)의 비조라 일컫는 풍후(風後)·악기(握奇)의 법에 따라 진법을 논하고, 여기에 척계광(戚繼光)의 병제를 개선하여, 음양가(陰陽家)의 제법(諸法)을 덧붙여 『연기신편(演機新編)』 3권 3책으로 엮었다. 1664년(현종 5) 안명로가 양산군수로 있을 때 이 책을 조정에 보내어 병제의 개편을 요청하였으나, 채택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다른 병서들과 함께 병사훈련에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안명로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50년(효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양산군수·서천군수·장연부사·안동부사·봉상시정 등을 역임하였고,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변방에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죽었다.
편찬/발간경위
『연기신편』은 안명로가 쓴 서문에 의하면, 1660년에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진법은 풍후·악기에서 시작되어, 여상(呂尙: 일명 태공망(太公望))·손무자(孫武子)·제갈양(諸葛亮)·이정(李靖) 등이 활용해 왔었다. 그런데 안명로는 당나라와 송나라 이후의 제가들이 고쳐서, ‘본지(本旨)’를 잃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풍후의 ‘구군방진(九軍方陣)·팔군원진(八軍圓陣)’과 제갈량의 ‘팔항방진(八行方陣)’ 및 이정의 ‘육화원진(六花圓陣)·십이장병방진(十二將兵方陣)’ 등을 진법의 정종(正宗)으로 삼아 악기의 진법을 밝혔다.
진법의 비조(鼻祖)라 일컫는 풍후·악기의 법을 두루 이해하여 진법을 논하고, 여기에 척계광의 병제를 개선하여, 음양가의 제법을 덧붙여 엮은 병서다.
이 책의 저자인 안명로는 1620년(광해군 12)에 태어났으며, 1650년(효종 1)에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64년(현종 5) 양산군수로 재직할 때 조정에 이 책을 올리며, 병제의 개편을 요청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668년(현종 9)에 서천군수를 지냈으며, 1671년(현종 12)에 연서찰방(延曙察訪), 1672년(현종 13)에 장연부사와 안동부사를 역임하였다. 1678년(숙종 4)에 우통례(右通禮)를 거쳐, 봉상시정(奉常寺正)이 되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변방에 유배되었다가, 배소에서 사망하였다.
서지 사항
3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은 21.5×16.7cm이다. 10행 22자의 유계, 반엽, 주쌍행, 상하내향2엽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9.0×22.3cm이며,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안명로가 쓴 서문에 의하면, 1660년에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책머리에는 12개조의 범례와 1658년(효종 9)에 홍석구(洪錫龜)와 1659년(효종 10)에 김득신(金得臣)이 쓴 서문 및 1660년에 저자가 쓴 자서가 실려 있다. 내용은 상권에 ‘구군팔진도설(九軍八陣圖說)·구군팔진방위지도(九軍八陣方位之圖)·구군팔문장교배열지도(九軍八門將校排列之圖)·구군팔문기정지도(九軍八門奇正之圖)·구군방진변위구군원진도(九軍方陣變爲九軍圓陣圖)’ 등의 도식과 그 해설이 있다. 아울러 ‘악기경주해(握奇經註解)·전후양단변(前後兩端辨)·금고정악기경(今考定握奇經)·연기팔진도설(演機八陣圖說)’이 실려 있다.
다음에는 ‘구군변위악기원진도(九軍變爲握奇圓陣圖)·팔군팔문기정장교배열도(八軍八門奇正將校排列圖)’ 등 ‘14도설’ 및 ‘제가병진도(諸家兵陣圖)’의 11도설이 실려 있다. 그리고 ‘거진총설(車陣總說)’ 이하에는 거진에 관한 ‘11도(圖)’의 도식과 그 해설이 있고, ‘병진후설(兵陣後說)’과 부록으로 ‘병진기계요통설(兵陣器械要通說)’ 등 5도가 실려 있다. 이상의 50여종의 도설은 모두 역대의 진설(陣說)을 연대순으로 밝히고, 제가의 설에 잘못된 곳을 바로잡은 것이다.
중권은 ‘삼략(三略)·육도(六韜)·소서(素書)·사마법(司馬法)·태을통종(太乙統宗)’ 등 병서에서 뽑아내어, ‘군도(君道)·신도(臣道)·택장(擇將)’ 이하 ‘장론(將論)’ 등 36개 항목으로 나누어 역사적 실례를 들어 해설하였다.
하권에서는 ‘천문초(天文抄)’에 ‘이십팔수분야도수재상휴구결(二十八宿分野度數災祥休咎訣)·일월오성론(日月五星論)·전진소리술(戰陣所利術)’ 등 19개조, ‘둔갑기문초(遁甲奇門抄)’에는 ‘삼기육의구성팔문결(三奇六儀九星八門訣)·음양둔상중하국가(陰陽遁上中下局歌)’ 등 11조가 실려 있다. 이들 초의 총 43조는 모두 점(占)과 관계된 것으로 병가에서 사용하던 술수다. 책 끝에는 ‘손자용병가(孫子用兵歌)·병가지리설(兵家地理說)·천시총론(天時總論)’이 실려 있다.
이 책은 1664년 안명로가 양산군수로 있을 때 조정에 보내어, 병제의 개편을 요청한 것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병서들과 함께 병사 훈련에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출처가 충무공 이수일(李守一)과 관련이 있으며, 책의 표지가 닳아 솜이 되도록 활용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김홍백, 「병서(兵書)를 읽는 두 가지 방법-조선 중후기 병서 비평자료를 중심으로-」, 『한국한문학연구』 제54집, 한국한문학회, 2014.
- 노영구, 『朝鮮後期 兵書와 戰法의 硏究』,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2.
- 민형기, 「朝鮮初期 陳法兵書가 五衛의 成立에 미친 影響」, 건국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 윤훈표, 「조선 전기 兵書의 강의와 무학교육」, 『역사문화연구』 제49집,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4.
- 조하영, 「한국 전통시대의 병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무학」, 한국체육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