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부(安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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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중심 시가지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안동부(安東府)는 신라의 고타야군(古陀耶郡)에서 기원하며, 신라 경덕왕 때 9주 중 상주(尙州) 관할하의 고창군(古昌郡)으로 편제되어 세 곳의 영현(領縣)을 거느렸다. 후삼국시대에 안동부의 유력자들이 고려 태조왕건(王建)에 협력하여 고려의 후삼국통일에 크게 공헌하였던 까닭에 안동부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고, 고려는 물론 조선에 이르기까지 경상도 북부 지역의 거점 도시로서 크게 중시되었다. 안동부는 고려시대에 안동부·길주(吉州)·복주(福州) 등으로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으나, 고려말기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명칭이 굳어졌으며,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조선시대에 안동부는 정3품의 대도호부사가 파견되는 대도호부로서 그 위상이 굳건하였다. 조선시대에 경상도에서 대도호부는 안동부와 창원부(昌原府) 두 곳만 있었다. 그중 창원부는 1601년(선조 34)부터 대도호부가 되었으므로 조선전기부터 대도호부로 위상을 갖고 있던 곳은 안동부가 유일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안동부는 안동군(安東郡)이 되어 23부의 하나인 안동부 즉 안동관찰부(安東觀察府)의 치소(治所)가 위치한 고을로 중시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안동군은 경상북도의 2등군으로 편성되었다. 조선시대에 안동부의 읍치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중심 시가지 지역에 위치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안동부는 본래 신라의 고타야군으로 신라 경덕왕 때 고창군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930년(고려 태조 13)에 고려와 후백제의 전투에서 김선평(金宣平) 등 안동의 유력자들이 고려 태조왕건을 도와 고려의 승리를 이끌었던 까닭에 안동부로 승격하였다. 후에 영가군(永嘉郡)이 되었다가 995년(고려 성종 14)에 길주자사(吉州刺史)가 되었다. 1012년(고려 현종 3)에 길주안무사(吉州安撫使),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길주사(知吉州事)가 되었으며, 1030년(고려 현종 21)에 안동부로 변경되었다. 1197년(고려 명종 27)에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1204년(고려 신종 7)에는 안동대도호부,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는 복주목(福州牧) 등으로 개명된 바 있다. 1361년(고려 공민왕 10)에는 공민왕이 피난했던 인연으로 안동대도호부로 다시 승격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안동대도호부의 읍격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대도호부사가 임명되었다. 즉 조선시대 안동부는 안동대도호부였으며, 1601년에 창원이 대도호부로 승격하기 이전까지 조선시대에 경상도에서 유일하게 대도호부 읍격을 지닌 고을이었다.

조직 및 역할

안동부는 신라 경덕왕 때 9주 중 상주 관할하의 고창군이 되었으며, 고창군은 직녕현(直寧縣)·일계현(日谿縣)·고구현(高丘縣) 세 곳의 영현을 거느렸다. 당시 고창군에는 군태수(郡太守)가 임명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고창군은 안동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 안동부는 영가군·길주·복주 등으로 개칭된 바 있었지만, 안동부라는 명칭으로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 특히 고려시대에 안동부는 14곳의 속군현을 거느릴 정도로 중요한 지역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였다. 고려말기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부로 피난을 간 이후, 안동부는 안동대도호부로 승격하여 위상을 굳건히 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안동대도호부로 유지되었으며, 정3품의 대도호부사가 임명되었다.

조선시대에 경상도에 대도호부사가 임명된 고을은 조선전기에는 안동부가 유일하였으며, 후기에도 안동부와 창원부 단 두 곳만 있었으므로 조선시대에 안동부의 중요성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70여 곳에 달하는 경상도의 전체 고을 중에 정3품 이상의 지방관이 파견되는 곳으로 넓혀 보아도 종2품의 부윤(府尹)이 파견되는 경주와 정3품의 목사(牧使)가 파견되는 상주(尙州)·진주(晉州)·성주(星州)만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안동부의 지역적 위상은 고려시대에 못지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안동부에는 지방관이 근무하는 외관청(外官廳)과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 달리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안동부사 즉 안동대도호부사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조선시대에 안동부의 영역은 기존 고려시대의 안동부 직속 영역 외에 안동부의 속군현으로 존재했던 영역, 그리고 안동부 치소와 멀리 떨어진 옛 부곡의 영역까지도 포함하였다. 그런 까닭에 안동부의 영역은 다른 고을에 비하여 넓게 구성되었으며, 타 고을의 영역을 넘어 들어가 위치한 땅인 이른바 ‘월경지(越境地)’도 다수 포함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안동부에 정3품의 대도호부사와 종5품의 판관(判官), 종6품의 교수(敎授)가 파견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부사(府使)는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겸임한다고 나와 있다. 18세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안동부에는 정3품의 문관(文官)이나 음관(蔭官)이 대도호부사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3명, 군관(軍官) 90명, 인리(人吏) 234명, 지인(知印) 68명, 사령(使令) 71명, 관노(官奴) 108명, 관비(官婢) 99명이 편성되었다. 판관과 교수는 이때에 이미 폐지되었다. 19세기에 편찬된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안동부에는 정3품의 대도호부사가 임명되는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판관과 교수는 폐지된 것으로 나와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안동부의 호수가 847호, 인구는 3,320명으로 기록되었다. 『여지도서』에는 1759년(영조 35)에 안동부의 호수가 15,597호, 인구는 66,929명으로, 그중 남자가 26,261명이고, 여자가 40,668명이라고 기재되었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자료인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안동부에 25개의 면과 236개의 리가 기재되었다. 『여지도서』에는 24개의 면이 기록되었다. 『호구총수』에 실린 25개 면은 부내면(府內面), 동선면(東先面), 동후면(東後面), 남선면(南先面), 남후면(南後面), 서선면(西先面), 서후면(西後面), 북선면(北先面), 북후면(北後面), 일직면(一直面), 풍현내면(豊縣內面), 풍남면(豊南面), 풍서면(豊西面), 풍북면(豊北面), 감천면(甘泉面), 임현내면(臨縣內面), 임남면(臨南面), 임동면(臨東面), 임북면(臨北面), 임서면(臨西面), 길안면(吉安面), 내성면(乃城面), 춘양면(春陽面), 소천면(小川面), 재산면(才山面)인데, 『여지도서』에는 그중 부내면만 빠져 있다.

『호구총수』에는 안동부의 호수는 11,696호, 인구는 50,603명으로, 남자는 21,409명, 여자는 29,194명이라고 기재되었다. 1910년(순종 4)의 조사 내용인 『민적통계표(民籍統計表)』에 따르면 안동의 호수는 18,831호이고, 인구는 89,193명으로, 그중 남자가 47,532명, 여자가 41,661명이었다. 조선시대에 안동부의 읍치와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일대에 위치하였다.

변천

고려말기인 1361년에 안동대도호부로 읍격이 정해진 이래 조선시대에도 안동대도호부의 읍격과 지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만 1576년(선조 9)에 자식이 어머니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던 까닭에 안동현(安東縣)으로 강등하고 대도호부사 대신 현감(縣監)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1581년(선조 14)에 다시 안동대도호부로 환원되었다. 1776년(정조 즉위)에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으며(『정조실록』 즉위년 8월 19일), 이후 1785년(정조 9)에 다시 원래대로 복구되었다(『정조실록』 9년 1월 13일).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안동부는 안동군으로 개칭되어 23부 중 하나인 안동부 즉 안동관찰부(安東觀察府)의 치소가 되었다. 1896년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안동군은 경상북도 관할하의 2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민적통계표(民籍統計表)』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輿地圖)』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