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림사(崇林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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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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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숭림사 |
한글표제 | 숭림사 |
한자표제 | 崇林寺 |
관련어 | 행여선사(行如禪師), 숭산(崇山), 소림사(小林寺), 선종(禪宗) |
분야 | 문화/종교/불교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전라북도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오경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숭림사(崇林寺) |
전라북도 익산시 옹포면함라산(咸羅山)에 있는 절.
개설
숭림사(崇林寺)는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 대사가 중국 숭산(崇山)의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 좌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숭산’과 ‘소림사(小林寺)’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고려후기에 창건됐으며, 조선시대에는 전란과 탄압으로 전각들이 소실되고 겨우 그 명맥만 유지되었다.
내용 및 특징
『익산구지(益山舊誌)』에 의하면 이 절의 보광전(普光殿)을 고려후기인 1345년(고려 충목왕 1)에 행여(行如) 선사(禪師)가 선종 사찰로 창건했으며, 기와를 조성했다는 명문(銘文)이 나왔다.
1554년(명종 9)에는 절에 불이나 보광전이 탔으나 다시 중건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보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 경상우도인 함양 일대에서 초유사김성일의 소모유사(召募有司)와 의병장 김면의 소모종사관(召募從事官) 등으로 활약한 정경운(鄭慶雲)은 전라도에 이르러 1598년 10월 2일 이청중·청숙(淸叔) 등과 함께 숭림사에서 두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볼 때 임진왜란 당시에도 절은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697년(숙종 23)과 1819년(순조 19), 1892년(고종 29) 각각 전각을 중수하여 절의 면모를 새롭게 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황성렬(黃成烈)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키고 1957년 고광만(高光滿)의 시주로 시왕전과 나한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고대일록(孤臺日錄)』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일조각,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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