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현(三嘉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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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삼가현 |
한글표제 | 삼가현 |
한자표제 | 三嘉縣 |
관련어 | 삼지(三支), 삼기(三岐), 기산(岐山), 마장(麻杖), 가주화(加主火), 가수(嘉樹), 가수(嘉壽), 봉성(鳳城)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폐지 시기 | 1914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삼가현(三嘉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4년 12월 3일, 『세종실록』 21년 3월 26일 |
신라시대로부터 기원하여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삼가현(三嘉縣)은 신라의 삼지현(三支縣)과 가주화현(加主火縣)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삼지현과 가주화현은 각각 삼기현(三岐縣)과 가수현(嘉樹縣)으로 개명되었다.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1373년(고려 공민왕 23)에 삼기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 1414년(태종 14)에 삼기현은 합천의 관할하에 있던 가수현을 합병하여 삼가현이 되었다. 통합된 후 삼가현의 읍치는 처음에는 옛 삼기현 지역에 있다가 1439년(세종 21)에 옛 가수현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삼가군이 되었으며, 1914년에 합천군에 합병되어 사라졌다. 조선시대에 삼가현의 중심지는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일대에 있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삼가현은 삼기현과 가수현 2개의 고을이 통합되어 형성된 고을이다. 삼기현은 신라의 삼지현에서 기원하며, 경덕왕 때 삼기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삼기현으로 유지되었다. 가수현은 신라 가주화현에서 기원하며, 경덕왕 때 가수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가수현으로 유지되었다. 1373년에 삼기현에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기 시작하였는데, 조선 건국 직후인 1394년에 왕사(王師) 자초(自超)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401년(태종 1)에 다시 삼기현이 되었다가 1414년에 가수현과 통합하여 삼가현이 되고(『태종실록』 14년 12월 3일),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다.
조직 및 역할
삼가현의 전신인 신라시대의 삼기현과 가수현은 각각 강주(康州) 강양군(江陽郡: 현 경상남도 합천군)과 강주의 영현(領縣)으로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 삼기현과 가수현은 모두 1018년(고려 현종 9)에 합주(陜州: 현 경상남도 합천군)에 내속하여 합주의 속현이 되었다. 두 고을에는 중앙에서 별도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으며, 합주에 파견된 지방관이 두 고을을 관할하였다. 대신 두 고을에는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두 고을은 삼가현으로 통합되었는데,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삼가현의 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조선후기에 편찬된 『삼가현읍지(三嘉縣邑誌)』에 의하면 6품의 음관(蔭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1명, 창도감(倉都監) 2명, 장교(將校) 20명, 향리(鄕吏) 20명, 율생(律生) 10명, 의생(醫生) 42명, 지인(知印) 22명, 도훈도(都訓導) 5명, 사령(使令) 21명, 관노(官奴) 23명, 관비(官婢) 12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옛 삼기현 읍치는 합천호 건설로 인해 수몰된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지역에 있었다. 그런데 1439년에 삼가현의 읍치를 옛 가수현 읍치가 있던 곳으로 옮겼다(『세종실록』 21년 3월 26일). 현재의 합천군 삼가면 소재지에 해당한다. 조선후기에 편찬된 『삼가현읍지』에 따르면 그 후에 관아를 다시 봉성(鳳城)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봉성의 실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삼가현은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삼가군으로 바뀌어 진주부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삼가군은 경상남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삼가군은 합천군에 합병되었으며, 일부 영역은 거창군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 삼가현의 읍치는 현재 삼가면 소재지가 있는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금리 지역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삼가현읍지(三嘉縣邑誌)』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