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蒙山和尙法語略錄諺解)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
한글표제 |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
한자표제 | 蒙山和尙法語略錄諺解 |
분야 | 종교/불교/국어학 |
유형 | 문헌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성종(成宗)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신미(信眉) |
간행처 | |
권책수 | 1책 |
소장처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동국대학교 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蒙山和尙法語略錄諺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15년 2월 26일 |
조선 초기 신미(信眉)가 원(元)나라의 고승 몽산화상(蒙山和尙)의 법어를 약록한 것을 언해한 책.
개설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蒙山和尙法語略錄諺解)』는 조선혜각존자(慧覺尊者)신미(信眉)가 『몽산화상법어약록』에 토를 달고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법어(法語)는 부처님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지칭하는데, 이 책은 이를 적어 승려들의 수행에 있어 길잡이 구실을 하며,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되었다. 원나라의 유명한 승려였던 몽산화상의 법어 6편과 고려나옹화상(懶翁和尙)의 법어 1편을 1책으로 묶었다.
편찬/발간 경위
몽산화상은 고려의 승려들과 교류가 많았는데, 특히 혜감국사(慧鑑國師)만항(萬恒), 보감국사(寶鑑國師)혼구(混丘)와 그러하였다. 이러한 교류는 고려 말 이후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인수대비(仁粹大妃)가 1472년(성종 3) 세조(世祖), 예종(睿宗), 덕종(德宗), 인성대군(仁城大君)의 명복을 빌고 대왕대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펴낸 불교 서적 29종 가운데 하나가 『몽산화상법어약록』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성종실록』 15년 2월 26일) 이때 『몽산화상법어약록』은 200부를 인쇄하였다.
신미는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를 저술한 후 나무판에 새긴 뒤 닥종이에 찍어냈다. 간행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간행연도는 알 수 없으나, 1467년(세조 13)에 만들어진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에 신미가 한글로 번역한 법어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467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처음 찍어낸 책 맨 앞장의 제목에 ‘혜각존자신미역해(慧覺尊者信眉譯解)’라고 신미의 이름이 있으나, 1472년(성종 3년)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찍어낸 책에는 신미의 이름이 빠져 있는 대신, 책 끝에 신미의 동생인 김수온(金守溫)이 쓴 글이 실려 있다.
서지 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질은 한지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30.9㎝, 가로 20㎝이다.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동국대학교 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몽산화상은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불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몽산화상의 제자인 철산소경(鐵山紹瓊)이 1304년 7월부터 3년간 고려를 방문했을 때 임금을 비롯하여 관료, 승려, 유학자에 이르기까지 고려인들은 그를 몽산화상 대하듯 하며 가르침을 청했을 정도였다. 나옹화상이나 천희(千熙) 등 고려 말의 고승들도 몽산의 유적을 탐방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몽산화상과 관련된 보물 및 유형문화재 등의 지정문화재가 약 20여 건 지정되어 있는데, 이는 몽산화상이 한국 불교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 책은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꼭 필요한 불교 용어 혹은 고유어로 바꾸기 어려운 어휘는 그대로 쓰거나 협주를 달았다. 법어의 특성상 접미사의 활용이 단순하고, 평서법이 많이 쓰이나, 의문형도 간혹 보이며, 부정문은 항상 긴 부정문이다.
‘ㅸ’은 체언이나 용언 어간, 용언 활용형, 파생어에 두루 나타나며, ‘ㆆ’은 고유어에서는 동명사 접미사 ‘-ㄹ’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ㅭ’에 쓰였다. ‘ㅭ+경음’ 표기사 일반화되어 각자병서는 제한적으로 쓰였으며, 정음 초기의 8 개 중에서 ‘ㅆ’, ‘ㆅ’, ‘ㆀ’는 쓰이지 않았다. 합용병서는 ‘ㅺ’, ‘ㅼ’, ‘ㅽ’, ‘ㅳ’, ‘ㅄ’, ‘ㅷ’, ‘ㅴ’이 쓰였고, 종성 표기는 『훈민정음해례』의 규정에 충실하다. 사잇글자는 체언이 결합할 때 음성적 환경에 따라 체언 사이에 들어가는 자음인데, 이 책에서는 주로 ‘ㅅ’이 쓰이고, ‘ㆆ’이나 ‘ㄷ’이 나타나기도 한다. 전자는 ‘無ㆆ字’에서 쓰이고, ‘ㄷ’은 같은 환경에서 ‘ㅅ’과 혼기되었다.
주격조사는 ‘이’와 ‘ㅣ’가 나타나며, 지정사 ‘이’도 주격조사처럼 쓰인다. 이 책에서 나타난 희귀어로는 ‘ᄀᆞᄀᆞᆨ하다(급박하다, 급하다)’, ‘대수(대숲)’, ‘비다(밷다)’, ‘살기잡다(옭아매다)’, ‘서이의(성기게)’, ‘쇠뷔(쇠비)’와 같은 어휘들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조선 초기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불경 언해서로서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의 원문 또한 일반적인 한문이 아니라 원(元)나라의 구어체를 반영한 것이어서 중국어의 변화를 연구하는 분야의 자료로도 활용 가능하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책의 경우 같은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책들과는 그 체제가 다르다는 점에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책에 대한 서지학적 연구의 자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간행 당시의 국어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국어사 자료로서의 가치가 무엇보다도 크며, 현재 원간본은 물론 중간본들도 영인되어 국어사 연구의 자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권화숙,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와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본의 비교 연구」, 『언어와 언어학』 35, 2005.
- 김무봉,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본 해제」, 『국어국문학논문집』 16, 서울대학교, 1993.
- 남권희,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본의 서지적 고찰」, 『어문논총』 25, 1991.
- 백두현, 「몽산화상육도보설의 국어학적 연구」, 『어문논총』 25, 1991.
- 하흥식, 『고려에 남긴 휴휴암의 불빛-몽산 덕이』, 창작과 비평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