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전교(馬廛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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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의 청계천이 동부의 오간수문으로 흘러 나가기 직전의 위치에 놓인 다리.

개설

마전교(馬廛橋, 馬前橋)는 조선초기부터 다리 옆에서 소와 말을 판매하는 마전(馬廛)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영조대에는 군영에서 마전의 권리를 침해해서 점포가 없어지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였다(『영조실록』 20년 8월 26일). 종로와 청계천에 놓인 다리 인근에 시전이나 상점이 있는 경우 그것의 성격에 따라 다리 이름이 지어졌다. 특히 가게를 의미하는 ‘전(廛)’은 ‘전(前)’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리 앞에 가게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언문과 한문 발음을 혼용해서 사용한 결과로 여겨진다.

명칭 유래

태종대에는 창선방(彰善坊)에 있는 다리라서 창선방교라고 불렀고, 성종대에는 태평교(太平橋)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초기부터 다리 부근에 소와 말을 매매하는 가게가 있었기 때문에 마전교 혹은 소다리라고도 하였다. 조선후기의 지도인 「슈션젼도」에는 마전다리, 「도성도」에는 마정교(馬井橋), 「한양경성도」에는 마군생교(馬軍生橋)라고도 하였다. 우마 매매가 다리 인근에서 주로 낮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교(午橋), 오굣다리라고도 했다.

위치 비정

오늘날 서울특별시 중구의 방산시장 앞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광희문(光熙門)에서 종로대로(鍾路大路)의 어의동(於義洞) 입구로 가는 도로가 지나가는 위치였다.

관련 기록

1441년(세종 23)에 서운관(書雲觀)에서 청계천의 우수(雨水), 천심(淺深), 분수(分數)를 알기 위해 마전교 서쪽 지역의 물속에 박석(薄石)을 놓은 뒤 돌 위를 파고 부석(趺石) 둘을 세웠다. 부석 가운데에 방목주(方木柱)를 세우고 쇠갈구리[鐵鉤]로 고정시켜 척(尺), 촌(寸), 분수를 기둥 위에 새겼다(『세종실록』 23년 8월 18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경도잡지(京都雜誌)』
  • 『여지도서(輿地圖書)』
  • 『한경지략(漢京識略)』
  • 나각순, 『서울의 성곽』,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4.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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