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표(南極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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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39년(인조 17)∼1701년(숙종 27) = 63세.] 조선 후기 현종~숙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의금부 도사(都事)이다. 자(字)는 명세(明世)이다.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거주지는 경상도 함창(咸昌)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남창하(南昌夏)이고, 어머니 황씨(黃氏)는 황현경(黃玄慶)의 딸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현종 시대 활동

1660년(현종 1) 사마시(司馬試) 생원과(生員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2세였다.[<사마방목>] 성균관에 들어가서 공부하다가, 부모의 상(喪)을 연달아 만나서 고향 함창에서 여묘살이를 하였다. 정국이 혼란스러운 것을 보고, 과거를 보아 벼슬할 생각을 버리었다.

숙종 시대 활동

1688년(숙종 14) 경상도의 유림(儒林)을 이끌고 상소하여, 송시열의 스승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을 문묘(文廟)에 배향(配享)할 것을 청하였으나, 숙종이 허락하지 않았다.

1694년(숙종20) <갑술옥사(甲戌獄事)>가 일어나서 장희빈(張禧嬪)이 쫓겨나고 인현왕후(仁顯王后)가 복위하면서, 남인(南人)들이 축출되고 서인(西人)들이 집권하자, 1696년(숙종 22) 비로소 벼슬길에 나가, 경기전 참봉(參奉)⋅장령전 참봉⋅제용감 봉사(奉事)⋅전생시 직장(直長)⋅내섬시 주부(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701년(숙종 27) 의금부 도사(都事)에 임명되었는데, 그해 병으로 돌아가니, 향년이 63세였다.

저서로는 『풍패기사(豐沛記事)』와 『병정록(丙丁錄)』이 있다.

성품과 일화

성품은 인후(仁厚)하고 관대하였다. 또 지성을 갖추었으므로, 남과 시비를 가릴 때에는 확고부동한 자기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문암집(文巖集)』
  • 『한수재집(寒水齋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