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열(羅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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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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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나열 |
한글표제 | 나열 |
한자표제 | 羅烈 |
분야 | 인물 |
유형 | 문신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영조~순조 |
집필자 | 이현숙 |
자 | 자회(子晦) |
호 | 주계(朱溪), 해양(海陽) |
출신 | 양반 |
성별 | 남자 |
출생 | 1731년(영조 7) |
사망 | 1803년(순조 3) |
본관 | 안정(安定) |
주거지 | 경기 과천(果川) |
증조부 | 나석좌(羅碩佐); 교관(敎官) |
조부 | 나준(羅浚); 감역(監役) |
부 | 나삼(羅蔘); 어모장군(禦侮將軍) 세자익위사 사어(司禦), 위솔(衛率) |
모_외조 | 박씨(朴氏); 박숙(朴塾)의 딸 |
형제 | (동생) 나걸(羅杰) |
처_장인 | 송씨(宋氏); 송기손(宋基孫)의 딸 |
자녀 | (1자) 나후야(羅後野) (2자) 나덕야(羅德野) |
저술문집 | 해양시집(海陽詩集)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나열(羅烈) |
총론
[1731년(영조 7)∼1803년(순조 3) = 73세.] 조선 후기 영조~순조 때의 문신. 서예가. 행직(行職)은 돈녕부 도정(都正)이다. 자(字)는 자회(子晦)이고, 호(號)는 주계(朱溪), 해양(海陽)이다. 본관은 안정(安定)이고, 거주지는 과천(果川)이다. 아버지 나삼(羅蔘)은 어모장군(禦侮將軍)세자익위사 사어(司禦)이다. 예조 참의(參議)나만갑(羅萬甲)의 5대손이고, 서예가 나걸(羅杰)의 형이다.
영조~순조 시대 활동
1753년(영조 29) 사마시(司馬試) 진사과(進士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3세였다.[<사마방목>] 음서(蔭敍)로 헌릉참봉(獻陵參奉)이 되었다가, 세자익위사의 사어(司禦)와 위솔(衛率) 등을 지냈다. 그 뒤에 여러 관직을 거쳐, 돈녕부 도정(都正)이 되었다. 만년에는 동생 나걸(羅杰)과 함께 전국의 산수를 유람하면서 시를 짓고 글씨를 남겼는데, 시는 두보(杜甫)의 시풍(詩風)을 따랐고,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의 필법(筆法)을 따랐다. 당대에 동생 나걸(羅杰)과 함께 시와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 시집으로는 『해양시집(海陽詩集)』이 남아 있다.
1803년(순조 3) 죽었는데, 향년이 73세였다.
부인과 후손
부인 송씨(宋氏)는 송기손(宋基孫)의 딸이다. 장남은 나후야(羅後野)이고 차남은 나덕야(羅德野)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일성록(日省錄)』[정조]
- 『사마방목(司馬榜目)』
- 『관암전서(冠巖全書)』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 『둔헌집(遯軒集)』
- 『백곡집(柏谷集)』
- 『벽오유고(碧梧遺稿)』
-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 『운계만고(雲溪漫稿)』
- 『이계집(耳溪集)』
- 『청성잡기(靑城雜記)』
- 『청성집(靑城集)』
- 『풍서집(豐墅集)』
- 『풍석전집(楓石全集)』
- 『해양시집(海陽詩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