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낭(吉囊)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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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길낭 |
한글표제 | 길낭 |
한자표제 | 吉囊 |
동의어 | 군빌렉([衮必里克], Günbileg) |
관련어 | 알탄칸(俺答汗), 우익삼만호(右翼三萬戶), 제농(濟農), 진왕(晉王), 북로(北虜), 추장(酋長), 엄답아불해(俺答阿不孩) |
분야 | 정치/외교/외교사안 |
유형 | 인물 |
지역 | 몽골 |
집필자 | 체렝도르지 |
이칭(자,호,봉작호,시호) | 메르겐 지농(Mergen jinong: [麥力艮吉囊]’)([麥力艮吉囊], Mergen jinong) |
성별 | 남 |
생년/일 | 1506년 |
몰년/일 | 1542년 |
본관 | 키야드 보르지긴 씨(Kiyad borjigin, Хиадборжигин) |
가족관계(부,조,외조[모], 장인[처], 형제) | 조부: 다얀 칸([達延汗], Dayan Khan), 부: 바르스 볼드 (Barsbolud), 동생: 알탄 칸([阿勒坦汗], Altan Khan)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길낭(吉囊)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37년 1월 15일 |
16세기 전반 몽골 우익을 통치하던 군주를 일컫던 칭호.
개설
길낭(吉囊)은 몽골어 지농(jinong)의 음역이었다. 원래 몽골제국 때 황제를 대신하여 몽골 본토를 통치하는 황태자의 칭호였던 진왕(晉王)에서 유래하였다. 제농(濟農)이라고도 표기하였다.
몽골제국 이후 시기부터 몽골귀족 수령의 칭호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지농은 주로 칸의 형제나 아들이 임명되었으며 대칸을 대신해 동몽골의 우익 30,000호를 통솔하였다.
지농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군빌렉 메르겐([衮必里克墨爾根], Günbileg mergen) 지농이었다. 그는 16세기 전반 몽골 우익을 통치하는 지농이었는데, 이름이 군빌렉이고 칭호가 메르겐 지농이었다. 명나라 사람들은 그 존칭을 바탕으로 ‘맥력간길낭(麥力艮吉囊, [Mergen jinong])’이라는 봉호를 만들었다.
군빌렉의 부친 바르스볼드(Barsbolud)는 (동)몽골 우익의 지농이었다. 원래 그는 다얀 칸의 셋째 아들이었으나 황태자 보디 알락(Bodi Alaγ) 대칸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를 대신해 섭정을 행하며 몽골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하였다. 바르스볼드가 죽자 그의 아들 군빌렉은 1532년 지농이 되어 우익 30,000호를 거느렸는데, 그 직속의 만호는 오르도스([鄂爾多斯], Ordos)였다. 처음에는 오르도스 위쪽의 평원지대인 하투(河套)와 그 서쪽에서 거주하였다.
가계
조부는 다얀 칸([達延汗], Dayan Khan), 부는 바르스볼드(Barsbolud), 동생은 알탄 칸([阿勒坦汗], Altan Khan)이었다.
활동 사항
군빌렉은 점차 세력이 강성해져 그의 동생인 알탄과 바야스갈 훈둘룬(Bayasqal Köndelen)을 거느리고 사방을 정복하였고, 여러 부족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몽골 대칸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1524년에서 1538년 사이에 네 차례나 군대를 이끌고 우량하이(Uriyangqai) 만호를 공격하였고 결국 정복하였다. 1532년과 1534년에 청해(靑海)를 공격하여 이바라이([亦不剌], Ibarai)와 부르하이([卜兒孩], Burhai) 등 몽골 수령을 대패시킨 후 그 무리를 장악하였다. 1533년에는 군대를 이끌고 산서성 대동(大同)의 반란군을 지원하였고, 그 반란군 대부분이 그를 따라서 몽골로 갔다. 여러 차례 명나라의 선부(宣府), 대동 등을 약탈하였고, 이로써 명나라 서북 변경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일찍이 명나라에 무역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말년에는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군정(軍政)을 돌보지 않아 권력이 동생인 알탄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군빌렉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노얀다라(Noyandar-a)가 지농이 되었는데 군빌렉의 아들 형제 9명이 영유지를 나누어 받은 데다 숙부 알탄이 점차 강력해져 노얀다라의 세력은 점점 약화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빌렉이 다스렸던 우익 30,000호는 알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군빌렉은 알탄과 더불어 명나라를 자주 공격하여 위협하였기 때문에 조선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중종대에 그에 대한 언급을 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엄답아불해(俺答阿不孩), 길낭 등은 곧 북로(北虜)의 추장이다. 병마(兵馬) 280,000으로 소왕자(小王子)를 받들고서 멋대로 내부(內部)의 흔주(忻州)로 들어왔다는데, 소왕자란 곧 천순 황제(天順皇帝)의 손자이다(『중종실록』 37년 1월 15일)”라는 기록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 Хөрвүүлсэн Ц.Цэрэндорж нар, Зарлигаар тогтоосон гадаад монгол, хотон аймгийн ван гүнгүүдийн илтгэл шастир, Согоо нуур, 2007. (Ts. 체렝도르지 등 역주, 『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傳』, 소고오 누우르, 2007.)
- Эрдэнэтунамалнэрт шастир, Соёмбо принтинг, 2006. (『에르데니 투누말이라는 역사』, 소욤보 프린팅, 2006.)
- Сагансэцэн, Эрдэнийнтовч , Улсын хэвлэлийн газар, 1961. (사강 세첸, 『몽골원류[蒙古源流]』, 국립출판사, 1961.)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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