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화(具毅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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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정보 | |
|---|---|
| 대표표제 | 구의화 |
| 한글표제 | 구의화 |
| 한자표제 | 具毅和 |
| 분야 | 인물 |
| 유형 | 무신 |
| 지역 | 한국 |
| 시대 | 조선 |
| 왕대 | 정조~순조 |
| 집필자 | 이현숙 |
| 출신 | 양반 |
| 성별 | 남자 |
| 출생 | 1758년(영조 34) |
| 본관 | 능성(綾城) |
| 주거지 | 양주(楊州) |
| 증조부 | 구성언(具聖彦) |
| 조부 | 구선명(具善明) |
| 부 | 구익겸(具益謙) |
| 자녀 | (1자) 구준희(具俊喜) |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 구의화(具毅和) | |
총론
[1758년(영조 34)∼졸년미상.] 조선 후기 정조~순조 때의 무신. 행직(行職)은 선전관(宣傳官)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거주지는 양주(楊州)이다. 아버지는 구익겸(具益謙)이다.
정조 시대 활동
1784년(정조 8) 정시(庭試) 무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27세였다.[<무과방목>] 바로 선전관(宣傳官)에 보임되었는데, 1786년(정조 10) 수어청 파총(把摠)을 지냈다.
1797년(정조 21) 구씨(具氏) 집안의 산송(山訟)문제가 발단이 된 조상의 분묘 훼손사건에 연루되어, 도형(徒刑) 1년 반에 천안군(天安郡)으로 유배되었다.
1799년(정조 23) 서용되어 다시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순조 시대 활동
1810년(순조 11) 통신사(通信使)의 군관(軍官)에 임명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후손
아들은 구준희(具俊喜)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일성록(日省錄)』[정조]
- 『무과방목(武科榜目)』
- 『동사록(東槎錄)』